무의식 속 불안과 공포, Massive Attack [Mezzanine](1998)

매니아의 음악 서재

무의식 속 불안과 공포, Massive Attack [Mezzanine](1998)

2020.11.12
Special

무의식 속 불안과 공포, Massive Attack [Mezzanine] (1998)

첫 곡 'Angel'에 대한 인상부터 나열해본다. 이것은 블랙박스인 동시에 기폭장치다. 저 멀리 봉화가 피어오르듯 음악은 시작되고, 서서히 볼륨을 높이면서 포복하듯 듣는 이에게 스멀스멀 다가온다. 나는 이것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주문을 봉인한 이 박스는 열리는 즉시 강렬한 굉음을 내면서 폭발할 게 틀림없다. 그렇다. 이것은 "매혹적인 금단의 음악"이다. 나는 본능을 자극하는 유혹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박스를 열어본다. 쾅! "거대한 (소리의) 습격"이 곧장 나를 덮친다. 영어로 하면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 출처ㅣClassicalbumsundays, Pitchfork, @Bristol247 페이스북, @ctwins 페이스북


Album

Massive Attack [Mezzanine] (1998)

Mezzanine


참으로 기이했다. 이렇듯 "느려빠진" 음악으로 잊히지 않을 청취 경험을 느끼게 해 준 음악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렇다. 그들은 느렸다. 나무늘보 뺨칠 만큼 느렸다. 그럼에도, 이 브리스톨 출신 밴드는 애니메이션 속 나무늘보 플래시라도 된 양 전 세계를 순식간에 감염시켰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중독성이었다. 세상은 이걸 트립합(Trip Hop)이라 불렀다.

브리스톨은 일찍이 노예 항구였다. 이런 이유로 온갖 인종이 섞여 살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영국 최초의 다문화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존재가 바로 매시브 어택이었다. 비평가 밥 스탠리(Bob Stanley)가 분석했듯 그들의 음악은 문화적 산물임이 확실했다. 매시브 어택은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덥(dub)과 레게, 샘플링, 약물로 이뤄낸 철학, 힙합, 포스트 펑크 등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혼합해냈다."

그 정점, 곡으로는 'Unfinished Sympathy'에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앨범 단위라면 내 선택은 좀 다르다. 모두가 역사적인 데뷔작 [Blue Lines](1991)나 한층 내밀한 사운드를 추구한 [Protection](1994)을 찬미하지만 이 작품을 능가할 순 없다고 본다. 바로 통산 3집에 해당하는 [Mezzanine](1998)이다.

매시브 어택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 가장 어둡고, 가장 헤비하며 공포 영화 사운드트랙처럼 들리는 작품이다. 앨범에 대한 평가마다 "claustrophobia(밀실공포증)"이라는 수식이 붙는 이유다. 1990년대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오프너라 할 'Angel'을 들어보라. 마치 바이스로 머리를 조이는 것 같은 뻐근한 사운드로 시작한 뒤 엄청난 텐션을 가하면서 듣는 이를 압박한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선택지는 없다. 탈출할 구멍 따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사운드의 폭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길 권한다. 종국에는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희열이 찾아올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이 곡의 보컬은 호레이스 앤디(Horace Andy), 자메이카 출신 레게 뮤지션으로 성별은 남자다. 왜 남자를 굳이 부기했는지는 음악을 들어보면 안다.

이런 기조는 음반의 끝까지 이어진다. 예외가 하나 있다면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영국 싱글 차트 10위)한 'Teardrop' 정도일 것이다. 이 곡에서 레코드판의 지글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하늘에서 강림하듯 등장하는 목소리의 주인공, 바로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의 보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zer)다.

1981년 영국 팝 신에 등장한 콕토 트윈스와 엘리자베스 프레이저는 환각에 빠진 듯한 천상의 목소리와 사운드로 주목받았다. 이 곡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치 요들처럼 진동하는 엘리자베스 프레이저의 목소리가 드넓은 사운드 텍스처를 풍성하게 채운다. 자료에 따르면 이 곡의 보컬 피처링으로 처음 고려된 인물은 마돈나(Madonna)였다고 한다. 그러나 멤버 중 2명이 반대하면서 엘리자베스 프레이저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몇 번을 곱씹어봐도 이건 신의 한 수였음에 분명하다.

앨범의 또 다른 베스트 싱글은 'Inertia Creeps'다. 마치 뱀이 똬리를 틀며 바구니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올 것 같은 발칸 지역 민속 음악의 신묘한 선율과 무겁게 내려앉은 퍼즈 기타를 환상적인 포스트 프로덕션으로 마감했다. 이 곡의 이미지는 그리하여 "사악함"이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다. "사악하면서도 섹슈얼"하다. 불가해하면서도 변덕스럽지만 끝내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첫 단락에서 언급했듯 매혹적인 금단의 음악이 되는 셈이다. 약속할 수 있다. 애처로울 정도로 살균된 음악 잠시 끊고 이런 음악에 한번 빠져보라. 맛 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뭐랄까. 당신이 디스토피아를 상상해본다면 그 배경음악으로 [Mezzanine]은 영순위가 될 수 있을 앨범이다. 때는 1998년, 새천년을 앞두고 인류의 무의식을 파고 들었던 불안과 공포를 암흑처럼 졸여놓은 듯한 음악이라고도 정리할 수 있겠다. 심지어 이 앨범의 사운드는 당대에 최첨단을 달렸다. 어디 한번 2020년 공개된 그 어떤 음반이든 비교해서 감상해보길 권한다. 녹슬게 들리기는커녕 되려 이 음반이 미래적으로 들릴 테니까.

이런 인상을 종합적으로 길어낸 영화 속 장면이 하나 있다.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Neo)가 극 초반에 헤드폰 끼고 잠들어 있을 때 듣고 있던 바로 그 음악. 그렇다. 이 앨범의 수록곡'Dissolved Gir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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