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s 재즈] 전통주의의 귀환, 재즈 왕정복고

에디션m

[80s 재즈] 전통주의의 귀환, 재즈 왕정복고

2024.07.11
Special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Story

전통주의의 귀환: 1980년대의 재즈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80년대의 재즈 역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계속되는 퓨전의 득세 속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던 메인스트림 재즈가 다시 복귀하는 현상이 '80년대에 벌어졌던 것이다. 디지털 악기와 CD가 등장하면서 재즈 전반의 사운드가 바뀌고 있었지만 동시에 과거 모던재즈 시대의 명반들과 그 음반사들이 부활하면서 재즈의 복고주의는 무시할 수 없는 기류가 되었다.

계속 전진 중인 퓨전 재즈

'70년대부터 주류를 차지한 재즈의 퓨전 현상은 '8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색소포니스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가 보컬리스트 빌 위더스와 함께 녹음한 'Just Two of Us'가 미국 싱글 순위 2위에 오르는 대성공은 이 시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33218361), 존 매클로플린은 알 디메올라, 파코 데로치아와 어쿠스틱 기타 트리오를 결성해 기타음악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마일스 데이비스, 칙 코리아 등 '70년대 퓨전 주역들의 음악도 계속 전진 중이었다.

반면에 웨더 리포트는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의 불화로 '80년대를 끝으로 해산하고 각기 새로운 활동에 들어갔다. 반면에 건반 주자 데이브 그루진은 1978년에 프로듀서 래리 로즌과 새로운 음반사 GRP를 설립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재즈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재즈 트럼펫 주자 겸 편곡자로 경력을 시작해서 '80년대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 정점에 올라섰던 퀸시 존스도 '80년대 후반 다수의 재즈 명인들을 초대한 앨범 [Back on the Block]으로 재즈계에 복귀했다.

팻 메스니는 그의 밴드 팻 메스니 그룹의 독자적인 사운드를 완성했으며 같은 세대의 마이클 블레커(색소폰)는 마이크 메이니어리(바이브라폰), 엘리언 엘리아스(피아노), 에디 고메즈(베이스), 피터 어스킨(드럼)과 같은 탁월한 연주자들과 더불어 그룹 스텝스 어헤드를 결성했다.

(1980년대 스무드 재즈를 주도했던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재즈의 왕정복고

하지만 퓨전이 지배하는 재즈의 흐름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는 늘 존재했다. '70년대 유럽과 일본 시장을 개척했던 재즈 앳 더 필하모닉 콘서트와 파블로 레코드는 그 대표적인 진지였다. 1973년에 시작된 콩코드 레코드도 페스티벌과 음반사를 함께 운영하며 메인스트림 재즈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다. 투츠 틸레망스, 오스카 피터슨,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 스탠 게츠, 새러 본, 모던재즈 쿼텟 등 모던재즈 시대의 명인들은 모두 이들 음반사와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자 과거의 녹음을 재발매만 하던 블루노트(당시 이 독립 음반사는 EMI 레코드로 합병되었다)와 켄템포러리 레코드(이 음반사 역시 당시에 판타지 레코드로 합병되었다)와 같은 전통적인 모던재즈 음반사들이 다시 문을 열고 새로운 음반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ECM과 더불어 독일의 대표적인 독입 음반사인 엔자 역시 메인스트림 재즈 음반을 지속적으로 발매했고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설립자 오린 키프뉴스는 새로운 음반사 랜드마크를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찰스 로이드, 아트 파머와 베니 골슨, 프랭크 모건, 찰리 라우스가 무대에 복귀했고토미 플래너건, 톰 해럴 등 중견 연주자들은 자신의 노선을 지킬 수 있었으며, 키스 자렛은 게리 피콕, 잭 드조넷과 향후 25년 동안 스탠더드 넘버를 중심으로 연주하는 트리오를 결성했다.

스탠 게츠와 덱스터 고든은 이 흐름 속에서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비슷한 인생 항로를 거쳤던 쳇 베이커는 '80년대에 마지막 걸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새로운 전통주의를 주도한 윈턴 마살리스)

이러자 EMI가 블루노트 레코드를 부활시킨 것처럼 대형 음반사들은 다시 메인스트림 재즈에 관심을 보였다. RCA는 산하 레이블 노부스를 만들어 카멘 맥레이의 음반을 녹음했고 블루노트는 미셸 페트루치아니를, 컬럼비아 레코드는 재즈 메신저스 출신의 윈턴, 브랜퍼드 마살리스 형제 그리고 보비 왓슨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메인스트림 재즈에서 젊은 세대의 등장은 이 음악의 분위기와 이에 대한 관심을 일거에 바꿔 놓았다. 디지 길레스피와 케니 버럴은 아들뻘인 후배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을 남기며 이 음악이 세대를 건너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해리 코닉 주니어는 이 시대의 대중 스타로 떠오른 보컬리스트 겸 피아니스트였다. 그런 점에서 기타리스트 에밀리 렘러의 때 너무 이른 타계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카멜레온

이러한 흐름 속에서 메인스트림 재즈와 퓨전 재즈의 구분은 사실상 모호해지고 있었다. 허비 행콕, 칙 코리아, 존 매클로플린,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 팻 메스니, 브랜퍼드 마살리스 심지어 마일스 데이비스도 경우에 따라서 다른 밴드를 조직해서 다양한 음악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많은 연주자는 자신의 음악에서 두 음악의 장점을 뒤섞었다. 클라우스 오거먼과 마이클 브레커, 자코 패스토리우스, 보비 맥퍼린, 길 에번스 오케스트라, 아마드 자말, 맨해튼 트랜스퍼, 다이안 슈어는 그러한 방식으로 뛰어난 음반들을 발표했다.

(재즈, 클래식, 팝 등 자유롭게 음악을 오갔던 보비 맥퍼린)

아방가르드 재즈의 노선도 마찬가지였다. 전위주의자들 역시 메인스트림 혹은 퓨전 재즈에서 필요한 음악적 요소들을 취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데이비드 머리, 칼라 블레이, 데이브 홀랜드, 잭 드조넷, 폴 모션 트리오, 월드 색소폰 쿼텟, 노마 윈스턴, 오넷 콜먼, 돈 체리, 찰리 헤이든과 리버레이션 뮤직 오케스트라는 전위 재즈의 제3의 길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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