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s 국내 힙합] 세대 교체와 언더그라운드 세력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미디어와 음원 시장을 통해 메인스트림으로 떠오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힙합은 엄연한 주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속된 성장 가운데 고유의 특성을 겸비해 탄탄한 수요층을 마련한 것으로 모자라, 막강해진 음원 차트와 스트리밍 시장에 발맞추고 변화를 수용해 대중의 우호마저 쟁취한 것이다. 기존 활약하던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 리쌍은 꾸준히 활약세를 펼쳤고, 슈프림팀과 매드클라운 등 차트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여러 신흥 세력이 나타나 기세를 이어갔다. 2009년까지만 해도 전체 음원 시장의 약 7%에 달하던 힙합 음악은 불과 6년 만에 27%까지 성장세를 보이는 쾌거를 거뒀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2010년대 힙합의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을 '쇼미더머니'가 있었다. 당시 인기를 끌던 '슈퍼스타 K'와 각종 서바이벌 포맷의 유행을 위시해 2012년 엠넷에서 새롭게 제작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는 래퍼가 모여 서로 경쟁을 펼치고 무대를 꾸려 나가는 신선한 유형을 선보이며 대중의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가운데 중 최초로 10년 넘게 지속된 것은 물론, 이 흥행에 힘입어 '언프리티 랩스타'와 '고등 래퍼' 등의 후속 프로그램이 론칭되기도 했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귀로 즐기는 음원과 달리 시청각을 고루 자극하는 미디어의 소구력과, 경쟁 구도나 인물 간 서사를 주입한 오락적 요소는 화젯거리를 제공하며 큰 반향을 이끌었다. 순식간에 힙합은 강력한 대중문화가 되었다. 일반인 출신의 아마추어 래퍼와 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전파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고, 시대를 풍미한 베테랑 래퍼도 하나둘 출연을 결정하며 참가의 제한을 점점 허물기 시작했다. 힙합 신 외곽에 위치한 수많은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도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췄으며 인지도를 얻은 수혜자들은 스스로 다음 시즌의 지원군 역할을 수행하며 화제성에 박차를 가했다.
일리네어 레코즈
저스트 뮤직
하이라이트 레코즈
AOMG
VMC
경연용 곡은 매번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프로그램 역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이 나간 한 주 간은 그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떠들썩할 정도였다. 어느덧 '쇼미더머니'는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설 수 있는 꿈의 등용문이자, 동시에 그 규격을 붕괴하고 인식 체계를 바꾼 룰 브레이커로 자리 잡았다. 현 아이콘(iKON) 소속인 바비의 시즌 3 우승으로 '아이돌 래퍼'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은 물론, 그레이, 그루비룸, 코드 쿤스트 등 곡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플레이어 못지않은 인기를 얻으며 전면에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커진 파급력 만큼이나 외연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2010년대에 이르러 미국 시장에서 출발한 트랩 열풍을 위시하는 흐름이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수용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차트 진출을 의식해 보컬을 기용하던 과거 양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양한 팝적 작법을 도입하고 아예 멜로딕 랩을 수행하는 래퍼가 등장하는 변화 역시 볼 수 있었다.
각 심사위원이 이끄는 레이블과 크루는 신의 노른자로 떠올랐다. 공식적인 세대 교체의 순간이었다. 도끼와 더 콰이엇이 이끄는 '일리네어 레코즈(1LLIONAIRE RECORDS)'와 그 산하에 위치한 '앰비션 뮤직(AMBITION MUSIK)'. 스윙스와 기리보이가 있는 '저스트 뮤직(Just Music)'과 산하 레이블 '인디고 뮤직(Indigo Music)'. 팔로알토가 수장으로 있던 '하이라이트 레코즈(Hi-Lite Records)'. 박재범이 설립한 'AOMG'와 산하에 위치한 '하이어뮤직(H1GER MUSIC)', 딥플로우가 수장으로 있던 '비스메이저컴퍼니(VMC)'가 당당히 중심에 섰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거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참가자가 성격에 따라 위 레이블에 입단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센스
빈지노
반면 일각에서는 '쇼미더머니' 위주로만 움직이는 상업지향적 흐름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하기도 했다. 커뮤니티에서는 미디어 개입에 대한 수많은 찬반 토론이 오갔으며, 시스템을 거부하는 언더그라운드 세력이 생겨나고 이를 소재로 사용한 작품도 등장하자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이때 오디션 밖에서도 괄목할 행보를 보이며 프로그램의 혜택 없이도 충분히 자신의 음악색을 풀어내고 대중을 설득시킬 힘을 증명한 인물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이센스는 복역 중 [The Anecdote]라는 앨범을 발매. 1990년대 분위기를 호출하는 비트,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노련한 래핑, 허심탄회하고도 담백한 서술로 굵직한 감동을 선사하며 당대 뮤지션과 리스너의 만장일치 수준의 역대 최고의 한국 힙합 앨범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재즈 힙합을 전면에 내건 재지팩트 활동과 솔로 프로젝트로 인기를 얻은 빈지노의 경우, 젊음을 찬미하고 가끔 상념에 젖어드는 이십 대의 심정을 매력적으로 그린 [Lifes Like]와 [2 4 : 2 6]을 통해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남기며 일약 청춘의 대변자로 부상했다. 이 둘의 행보는 여러 후발주자에게 귀감을 선사하며 자신감을 준 계기가 되었다.
저스디스
키드밀리
창모
소셜네트워크의 발달로 활성화된 유튜브 시장은 새로운 신인 발굴의 장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프로듀서이자 래퍼인 뉴올(NUOL)의 기획으로 2009년 등장해 현재 6개의 시즌을 거친 '마이크스웨거(MIC SWAGGER)'는 프리스타일 랩이라는 문화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여한 콘텐츠다. 호스트를 맡은 허클베리 피와 지조, 게스트 중에서는 저스디스, 슈퍼비, 키드 밀리, 창모 등 많은 래퍼가 인상적인 무대를 펼치며 큰 호평을 자아냈다. 2010년대 말 출범한 '딩고 킬링벌스' 역시 랩의 묘미를 순도 높게 즐길 수 있는 구성으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끌었다.
격동의 2010년대를 지나 우리가 직면한 오늘날의 힙합 신은 곳곳에서 저마다 총천연색 개성을 가진 신인이 등장하는 다양성의 시대다. 작업 기술의 발달과 샘플팩을 판매하는 '스플라이스(Splice)'의 보편화로 홈리코딩 구축과 의도한 사운드를 구현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고, 사운드클라우드와 SNS를 통해 마음에 맞는 협업자를 구인하며,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장으로 리스너가 이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소비하는 시장에 도달했다.
오케이션
XXX
씨잼
과거 신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다시금 신에 영향을 전파하는 선구자들의 명단이 별처럼 수놓는다. 파격적인 클라우드 랩으로 판도를 바꾼 코홀트 사단, 날 선 가사와 실험적 음향으로 독립적인 영토를 구축한 XXX, 장르 대통합의 변혁으로 얼터너티브 힙합의 최전선에 위치한 바밍 타이거 크루, 이모 랩 형식을 도입해 성공적인 스타일 변화를 거둔 씨잼까지. 30년의 투쟁을 거치며 깊은 역사와 자생 가능한 환경을 얻어낸 한국 힙합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고 넓다. 앞으로 등장할 또 다른 별들이 아무리 장식되어도 공간이 모자라거나 쉽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