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s 국내 알앤비] 한국형 알앤비의 단초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한국형 소울 음악부터 펑크, 디스코까지
흔히들 한국의 알앤비를 1990년 전후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앤비라는 장르의 역사 자체가 굉장히 오래된 만큼 한국의 알앤비 또한 그 시계를 따라왔다. 소울, 디스코, 그리고 현재의 알앤비로 오기까지의 계보가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존재하며, 2020년 전후로 알앤비 음악가가 과거의 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풀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며 그 증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과거의 한국 대중음악을 단순히 가요, 가곡, 성인가요 정도로만 치부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알앤비의 역사를 보통은 1990년 전후를 시작점으로 잡고는 한다. 그 시기가 우리가 흔히 아는 알앤비라는 장르 음악에 근접한 작품이 나왔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앤비라는 장르 자체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트레디셔널 알앤비'라는 카테고리를 두고 상을 주는 것처럼 알앤비는 현재 존재하는 컨템포러리 형태의 알앤비가 있고, 소울이라는 장르명으로 더 잘 알려졌던 고전적인 알앤비가 또 있다. 한국의 알앤비 음악도 미국 알앤비의 역사와 함께 하는데, 상대적으로 소울의 시기라 불렸던 때의 음악은 장르 음악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현대사의 어쩔 수 없는 흐름 속에서 한국 대중음악사는 흔히들 '미8군'이라 불렀던, 미군 부대 중심의 공연 산업과 궤를 함께 한다. 기록매체의 등장 이후 한국에서도 앨범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시기의 정점에 이른바 신중현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뛰어난 연주자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인 신중현을 중심으로 그가 직접 발굴하거나 그와 함께 작업해온 음악가들이 함께 활동을 했는데, 그때 신중현이 구사했던 장르 중 하나가 소울이었다. 그는 소울과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접목하는 시도를 했는데, 그중에서도 소울이라는 장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음악가가 있었으니 바로 박인수다. 박인수는 신중현이 제작한 여러 앨범에 참여하던 중 1971년 가장 잘 알려진 '봄비'를 세상에 내놓았고, 이후 두 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자신이 소울 음악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장의 작품 안에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진 듯했다. 이 시기 박인수가 소울 음악을 표방했다는 것은 신중현의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여전히 회자되는 곡 중 하나인 'A Change Is Gonna Come'을 통해 증명된다.
김추자 또한 신중현 사단의 일원이었다. 뛰어난 가창력을 바탕으로 소울, 펑크 음악을 들려줬다. 여기서 펑크는 백인 중심의 밴드 음악이 아닌, 소울 음악을 기반으로 흥겨운 리듬이 더해진, 60년대 중후반에 탄생한 장르를 이야기한다. 김추자가 좋은 펑크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신중현과 그의 밴드가 있어서다. 펑크 자체가 밴드 구성원 간의 긴밀한 합으로 적절히 리듬을 밀고 당겨 매력적인 리듬을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김추자의 음악에서는 그런 부분이 도드라진다. 그 위에 힘 있는 가창이 더해지니 이 시기 김추자의 음악은 감히 그 당시 북미의 펑크 음악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70년대 후반부터는 혜은이가 작곡가 길옥윤의 작곡, 편곡을 통해 펑크 스타일을 풀어냈고 나미는 프랑코 로마노(Franco Romano)와 함께 펑크, 디스코의 결을 품었다. 그리고 프랑코 로마노와 함께했던 베이스 연주자 사르보는 사랑과 평화의 첫 앨범에서 기가 막힌 베이스를 연주했다. 펑크는 연주자, 작곡가를 중심으로 구현되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디스코의 유행과 맞물려 발전했다. 김명곤과 같은 좋은 키보디스트는 신스 사운드를 통해 디스코 특유의 소리 구성을 담아내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 펑크, 디스코 곡은 모두 댄스 음악, 소위 '댄스곡'이라고 표기되었다. 당시에는 그러한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르보는 Sarvo 혹은 Salvo로 표기되나, 일반적인 표기상 Salvo로 추정된다. 한국어로는 사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펑크 음악에 필요한 주법을 사용하며 곡의 리듬을 더한 사르보 덕에 사랑과 평화의 음악은 좀 더 확실하게 펑크 음악을 표현할 수 있었다. 사랑과 평화의 시작을 만든 이들 중에는 익히 잘 알려졌듯 이장희가 있고 언급한 사르보도 있지만, 그 안에는 뛰어난 작곡가인 김명곤도 있었다.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인 김명곤은 나미의 '빙글빙글'을 비롯해 나미와 혜은이, 정수라가 불렀던 디스코 곡들을 작곡하거나 편곡했다. 김명곤이라는 음악가는 장르를 가리진 않았지만, 그가 있었기에 한국도 디스코 디바를 품을 수 있었다. 장르에 대한 이해가 적었던 시절, 이들은 갈래를 뛰어넘는 음악성과 모두를 춤추게 만드는 흥으로 사랑받았다.
여기에 기존의 소울-펑크-디스코 계열의 전통적인 알앤비 음악과 지금의 알앤비 음악을 잇는 링크와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박남정이다. 한국에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동경하고 그 계보를 잇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박남정은 가장 앞서 있으면서도 가장 훌륭하게 그 음악을 표방한 음악가다. 특히 [박남정 2집] 이후로 직접 자신이 곡을 작사, 작곡하는가 하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통속적인 멜로디를 탑라인(가수가 가창하는 부분)에 쓰면서도, 트랙(탑라인을 제외한, MR이라 불리는 부분)에는 비교적 세련된 형태로 풀어내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대중에게 알렸다. 박남정은 1980년대 말부터 팝 음악의 한 갈래로 불렸던 컨템포러리 알앤비를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그 증거가 [박남정 3집]에서부터 드러나는데, 특히 이 앨범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김명곤이 작곡가로 참여하며 박남정의 음악적 욕심을 뒷받침했고 5집을 통해 공개한 '비에 스친 날들'을 통해 마침내 대중을 설득하는 데에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