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s 국내 힙합] 한국 힙합의 골든 에라

에디션m

[00s 국내 힙합] 한국 힙합의 골든 에라

2024.07.15
Special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Story

세기말의 자양분을 토대로 본격적 출항을 알리다

2000년대는 '한국 힙합의 골든 에라'다. 수많은 음악가에 의해 작업물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며 양적 성장을 거뒀고, 힙합이 랩이라는 기술적 도구가 아닌 장르 자체로 수용되고 인정받기 시작한 정착의 시대다. MTV의 디제잉과 비보잉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힙합 음악을 소개하는 '힙합 더 바이브'라는 전문 프로그램이 개설된 것은 변화의 예다. 개념과 기반이 마련되자, 이제는 음악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도 어떤 음악이 힙합인지 구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비록 원류인 미국처럼 슬럼 문화, 인종 차별, 마약과 총기 문제를 직접 겪고 체감한 것은 아니었지만, PC 통신 세대를 지나 인터넷과 포털 사이트의 급격한 발달로 누구든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자 해외 음반을 수입해 듣고 열광하는 젊은 층이 대폭 늘어났다. 2000년대 초반에 탄생한 '힙합플레이야'와 '리드머'의 회원 수가 각각 15만, 13만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당시 힙합에 몰려든 관심의 지표를 단적으로 말한다.

모여든 리스너들은 서로 의견을 피력하며 열띤 토론을 펼쳤고 점차 한국만의 방식으로 고찰을 거듭하며 질적 성장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그중 '라임'에 대한 많은 논쟁이 오고 갔는데, 돌풍에 있던 것은 버벌진트와 4WD, 피타입이 속해 있던 나우누리의 'SNP'다. 이들은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태생적으로 각운 외 라임을 만들기 어렵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고, 단어와 문장 전체의 어감을 다각적으로 활용한 신식 라임 구조를 처음으로 선보여 국내 힙합이 한 차례 껍질을 깨고 비상할 수 있는 발판을 제시했다.

동호회에서 크루로, 크루에서 레이블로

물론 시금석 격의 다양한 음반과 싱글이 탄생할 수 있던 배경에는 크루와 레이블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비단 국내뿐 아니라 힙합은 장르 특성상 기획사의 손을 빌리기보다는 방향성이 맞는 이들과 독자적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오늘날까지도 레이블 문화는 신을 유지하는 주요 문화이자 기반으로 자리한다. 당대 많은 크루와 레이블이 각종 컴필레이션과 단체곡을 주도하며 자기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소속 아티스트의 개별 작업물에도 프로듀싱과 피처링을 적극 지원하며 자기만의 부피를 늘려나갔다. [1999 대한민국]을 전신 삼은 '대한민국' 시리즈와 YG 패밀리의 [Famillenium], 마스터 플랜의 단체 앨범 [MP Hip Hop Project 2000 超]가 유명하다.

그 외에도 최초의 독립 힙합 레이블로 주목 받은 '로우독 레코드(Rawdogg Records)',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멤버 양현석이 설립한 'YG엔터테인먼트', 붓다 베이비(Buddah Baby)라는 크루로 시작해 레이블로 거듭난 '스나이퍼 사운드' 등이 존재했다. 힙합이 아직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상황 속,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드렁큰 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리쌍, 은지원, 에픽하이, 부가 킹즈, 양동근 등이 대거 결집한 크루 '무브먼트'는 메이저와 마이너 영역 전반에 고루 영향력을 떨치는 규모를 자랑했다.

2000년대에 있어 놓치면 안 될 주요 거점을 소개하자면 '빅딜 레코드'와 '소울컴퍼니', '오버클래스'를 꼽을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고수하고 1990년대 중후반 하드코어 힙합 사운드를 추구한 빅딜 레코드는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코어층의 지지를 받았다. 데드피의 [Undisputed]가 반향을 이끌고, 뒤이어 어드스피치, 마일드 비츠, 이그니토, 라임어택 등이 활약하며 레이블의 입지를 올려놓았다.

청소년 학습 공간 '하자센터'에서 열린 MC 메타의 강좌 수강생들과 그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소울컴퍼니는 준수한 완성도의 컴필레이션 [The Bangerz]로 이목을 끌며 존재감을 알렸다. '답답함을 풀어헤친다'는 뜻의 소울(疏鬱)을 명명 삼은 만큼, 빅딜 레코드와는 달리 소박하고 감성적인 음악과 따스한 가사를 지향하며 당대 청소년의 인기를 끌고 입문처를 제공했다. 개성파 래퍼를 한데 모은 파격적 라인업과 공격적 태세로 알려진 오버클래스는 한국 힙합의 이단아로, 창의적 시도와 원색의 자극적 맛이 가득한 'Collage' 시리즈를 통해 스스로 대안을 자처하며 키치한 매력을 선보였다.

수면 위로 올라온 새천년의 힙합

여러 집단이 각자의 색을 만개할 무렵, 몇몇 힙합 뮤지션은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음악으로 인기 차트와 공중파 방송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드렁큰 타이거의 'Good Life'가 'SBS 인기가요'에서 2주 연속 정상을 차지하며 주류 진출의 서막을 활짝 열었고, 2004년에는 조PD가 인순이 피처링의 '친구여'를 통해 높은 인지도를 얻기에 이른다.

한 번 올라탄 기세는 가라앉지 않고 후배 아티스트에 의해 더욱 세차게 이어졌다. 2005년 에픽하이는 'Fly'로 동방신기의 전성기를 선포한 'Rising Sun'을 제치고 3주간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고, 리쌍은 '내가 웃는게 아니야'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에 등극하며 뇌리에 이름을 각인했다. 또한 2006년 YG엔터테인먼트에 의해 등장한 블랙 뮤직 기반의 그룹 '빅뱅'의 유례없는 성공은 훗날 K-POP의 성장과도 맞물리며 힙합 스타일을 차용한 아이돌 그룹이 다수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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