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s 해외 록] 로큰롤의 시대

에디션m

[50s 해외 록] 로큰롤의 시대

2024.07.18
Special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 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음악을 탐구하는 멜로너를 위한 대중음악 지침서, 에디션m

Story

록의 시작, 로큰롤

로큰롤은 리듬앤블루스, 블루스와 재즈, 부기우기, 가스펠, 그리고 컨트리 음악의 여러 스타일이 상호 작용 및 융합을 거쳐 1950년대 중반 확고한 형태를 갖추며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음악 장르다. 그리고 바로 이 로큰롤에서 발전한 '백인의 음악'이 록 음악이다. 보컬과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을 기본으로 절(verse)과 후렴(chorus)으로 이루어진 4/4박자의 음악이 록의 기본 형식을 이룬다. 강렬한 베이스 라인과 질주하는 리듬을 특징으로 하며, 곡조는 첫 음에 강세를 주는 4박자로 전개하고 베이스와 드럼은 두 번째와 네 번째 음을 강조하는 '백비트'를 주로 사용한다. 물론 록 음악 자체가 이전의 여러 장르에서 복합적으로 발전을 이룬 음악이고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파생 장르로 진화한 탓에 단순하게 몇 마디로 정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1999년 미국 NBC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프릭스 앤 긱스'에 등장하는 대사는 록 음악의 성격을 명쾌하게 말해 준다: '로큰롤은 머리에서 나온 게 아냐. 바짓가랑이에서 나왔다고.'

20세기 중반 이전 블루스와 재즈가 인기를 얻으며 흑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레이스 뮤직'으로 불리고 있었다. 1940년대 후반, 리듬앤블루스와 가스펠, 블루스 등 레이스 뮤직은 백인의 음악인 컨트리(힐빌리), 포크와 결합되어 '로커빌리'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되었다. 로큰롤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는 로커빌리를 대표한 이들은 칼 퍼킨스와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 리 루이스, 조니 캐시, 조니 버넷, 빌 헤일리 등 백인 뮤지션들이었다. 이 활기 가득한 역동적 음악은 백인 대상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광범위하게 소개되며 '로큰롤'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었다. 이 용어와 음악을 널리 알린 인물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며 명성을 쌓은 DJ 앨런 프리드로 알려져 있다. 애초 뱃사람들이 흔들리는 배의 모습을 표현한 말인 'rocking and rolling'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로큰롤'은 성행위의 은유로도 쓰였던 표현이기도 하다. 1954년 4월 빅 조 터너의 'Shake, Rattle And Roll'이, 1955년 7월 흔히 '로큰롤 기타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척 베리의 'Maybellene'이 빌보드 리듬앤블루스 차트 1위를 기록한 일, 그리고 같은 달에 재발매된 빌 헤일리 앤 히스 코메츠의 1954년작 'Rock Around The Clock'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8주 동안 정상에 머무른 일은 새로운 음악 장르의 본격적인 대중화를 알린 의미 있는 성과였다.

세상을 뒤흔든 엘비스 프레슬리

'로큰롤의 아버지' 척 베리와 '로큰롤의 개척자' 리틀 리처드를 비롯하여 패츠 도미노, 에벌리 브라더스, 버디 홀리, 보 디들리, 제리 리 루이스, 에디 코크런, 재키 윌슨 등 수많은 이들이 (때로 리듬앤블루스와의 경계에서) 장르를 대표했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압도적 인기를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역시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그는 컨트리 앤 웨스턴, 트래디셔널 팝과 같은 백인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가스펠과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등과 같은 흑인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완벽히 표출했다. 또한 그는 로큰롤 음악을 주류 백인 사회에 진입시킴으로써 이후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꾸어 버린 인물이기도 하다. 20세기의 대중음악, 이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아티스트로서 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존 레넌의 말이 아니라도, 무수한 뮤지션들이 그의 음악을 듣고 음악을 시작했으며 그의 영향 아래에서 혁신적 진보를 이루었다. 그가 없었다면 비틀스도 밥 딜런도 엘튼 존이나 퀸도 등장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로큰롤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할 무렵 많은 이들은 이 새로운 음악의 미학적 혁신성이 아니라 도덕적 위협 때문에 날 선 비판을 보냈다. 주류 매체와 기존 뮤지션들이 앞다투어 로큰롤에 보낸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시선 속에서 엘비스는 특유의 육감적이고 노골적인 몸동작과 굵고 나직한 바리톤의 목소리로 부르는 탁월한 노래, 풍요롭고 섬세한 감정 표현을 통해 청년들을 매혹했다. 흑인의 음악도 백인의 음악도 팝도 컨트리도 R&B도 아닌 음악, 새로운 스타일의 목소리와 사운드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었으며 그의 언어, 몸짓, 패션은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로큰롤을 세계적인 팝의 언어로 만든 인물'이라는 롤링 스톤의 표현은 절대 과하지 않다.

로큰롤의 전성기는 짧았지만 파급력은 길었다

'록 음악'을 영어로 이야기할 때 'rock music'보다 더 많이 쓰이는 표현은 'rock and roll'이다. 로큰롤은 60년대 이후 록 음악으로 발전하고 현대적 팝의 기본 바탕이 되는, 결과적으로 20세기 대중 문화를 바꾸어 버린 대중음악 장르다. 로큰롤은 한때 '팝 음악'을 대변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보다 넓고 포괄적인 의미의 '록 음악'과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로큰롤 음악이 얼마나 큰 문화적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일례에 불과하다. 음악 장르로서의 로큰롤이 전성기를 누린 시기는 흔히 그 탄생 연도로 일컬어지는 1954년(엘비스 프레슬리의 'That's All Right'과 빌 헤일리 앤 히스 코메츠의 'Rock Around The Clock'이 처음 녹음되고 발표된 해)부터 5~6년에 불과하다. 장르의 선구자들에게 닥친 일련의 큰 사건들이 장르의 쇠퇴에 영향을 주었다.

리틀 리처드는 1957년 10월 목사가 되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8년 3월 군에 입대했으며, 같은 해 5월에는 몇 달 전 결혼한 제리 리 루이스의 아내가 13살짜리 사촌 누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이 일었다. 1959년 2월 버디 홀리와 리치 발렌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며 11월에는 DJ 앨런 프리드가 음반사로부터 뇌물을 받아 왔다는 '페이올라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12월에는 척 베리가 세인트루이스에 오픈한 자신의 나이트클럽에서 고용한 14살짜리 미성년 웨이트리스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1960년 4월, 영국에서 공연을 마친 에디 코크런은 탑승한 택시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나중에 돈 매클린이 자신의 노래 'American Pie'(1971)에서 버디 홀리의 죽음을 '음악이 죽던 날'로 묘사한 것처럼, 짧았던 로큰롤의 시대는 곧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음악의 영향력은 전에 없이 강렬하기만 했다. 뒤이은 '록의 시대'는 대중음악의 지도를 바꾸게 된다. 하드 록과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펑크 록, 컨트리 록, 뉴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등 록의 수많은 하위 장르는 결국 70년 가까이 된 오랜 음악의 변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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