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에 아프리카의 영혼을 담다, 윌리엄 도슨과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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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에 아프리카의 영혼을 담다, 윌리엄 도슨과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교향곡

2023.10.04
Special

윌리엄 도슨과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교향곡

클래식이라고 하면 이른바 '예술 음악'이라는 전통과 권위가 부여됩니다. 그래서인지 알게 모르게 보수적인 경향도 강하고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거장' 음악가들에 대한 존경심도 매우 높죠. 이러한 '거장' 중심으로 진행된 클래식계의 흐름은 오늘날 우리가 위대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도치 않게 소외된 음악가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죠.

클라라 슈만

21세기의 클래식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역사적,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잊힌 음악가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죠. 클라라 슈만, 파니 멘델스존, 세실 샤미나드 등 그동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던 여성 작곡가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로렌스 프라이스

지휘자 야니크 네제 세갱(Yannick Nezet-Seguin)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아주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 20세기 클래식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오늘날 거의 잊힌 흑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죠.

이러한 일환으로 이미 네제 세갱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플로렌스 프라이스(Florence Price, 1887-1953)의 작품을 다수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들이 녹음한 프라이스 교향곡 1번&3번 앨범은 그래미 시상식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상을 수상했습니다. 최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Randall Goosby)와 함께 프라이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하기도 했죠.

랜들 구스비

곡리스트 9

네제 세갱이 새롭게 내놓은 이번 앨범도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흑인 작곡가들을 발굴하는 것에 힘쓰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프라이스의 [교향곡 4번]과 함께 또 다른 흑인 작곡가인 윌리엄 도슨(William Dawson, 1899-1990)의 [Negro Folk Symphony]가 수록되어 있죠. 물론 단순히 흑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작품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세계 각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뒤섞여 사는 '다문화 국가' 미국의 정체성이 진하게 녹아있는 뛰어난 음악이죠.

윌리엄 도슨

우선 도슨의 [Negro Folk Symphony]를 살펴볼까요? 이 곡은 1934년 전설적인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고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이 팽배했던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맞물려 서서히 잊힌 작품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아는 사람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총 세 악장으로 나누어진 이 곡은, 대서양을 건너 노예로 팔려나간 수백만의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일종의 애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마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죠. 아프리카 특유의 리드미컬함과 전통적인 선율에 미국적인 정서까지 녹아있어 생각보다 무겁게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또한 브람스와 드보르자크와 같은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럽식 클래식 음악에 익숙한 청중들에게도 전혀 어색함이 없죠.

'나는 우리 음악의 가능성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의 음악이 언젠가는
브람스나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과
동등한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야닉 네제 세갱

한편, 프라이스의 [교향곡 4번]은 도슨의 [Negro Folk Symphony]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전통적인 교향곡 어법에,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흑인 음악의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어 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945년에 작곡되었지만 생전에는 초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50여 년이 훌쩍 지난 2009년에 처음 악보가 발견되었습니다. 초연은 그로부터 9년 뒤인 2018년에 이루어졌으니 무려 73년 만에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죠. 총 네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 4번]은 탄탄한 구성 속에 다양한 요소가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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