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 Miss Anthropocene (Explicit Ver.)
- Grimes
- 앨범 평점 4.5/ 43명
- 발매일 : 2020.02.21
- 발매사 : Beggars Group Digital Ltd.
- 기획사 : 4AD
맹렬하면서도 기이한 재능으로 무장한 DIY 팝 컬쳐의 아이콘, 그라임스(Grimes) 최면의 테크노 팝 Miss Anthropocene
5년이라는 짧지 않은 공백 이후 드디어 그라임스의 신작이 공개됐다. 앨범 제목 [Miss Anthropocene]은 '인간혐오'를 뜻하는 'Misanthropy'와 인류의 지구 생태계 침범을 특징하는 현재의 지질학적 시기를 일컫는 'Anthropocene'를 합성하고 뒤튼 신조어이다. 로마 신화와 악당에게서 영감 받은 앨범은 '기후 변화의 여신'을 컨셉으로 인류의 멸망에 관해 다루고 있다. 기후 변화를 의인화하면서 이를 추상적이거나 운명적인 것이 아닌 조금 더 피부에 와 닿게끔 유도해냈다는데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대해 더욱 신경 쓰게끔 만들려 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종종 하기도 했다. 그라임스 스스로가 악당이 되었다 선언하고 있기도 하며, 조커와 타노스 같은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아 악당을 예술적으로 추구하고 싶다 밝히기도 했다.
앨범 발매 일정을 공개하면서 그에 맞춰 선보인 'So Heavy I Fell Through the Earth'는 6분 여의 시간 동안 마치 엔야(Enya)와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 사이에 위치한 듯한 소리를 들려준다. 마치 비디오 게임 로딩 화면 같이 반복되는 비디오 또한 곡의 판타지한 분위기와 적절하게 맞물려진다. 이런 드라마틱한 분위기는 'New Gods' 같은 트랙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My Name Is Dark'의 비디오 경우 그라임스가 도쿄의 호텔에서 혼자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 적인 요소들 또한 간간히 엿볼 수 있다. 나우, 나우(Now, Now)의 곡 'SGL'의 드럼을 차용하고 있는 곡으로, 전작의 'Kill V. Maim'와 비슷한 이미지의 리듬감을 주고 있다. 곡의 믹스 경우 주로 헤비한 음악들을 작업해온 명 프로듀서 앤디 월러스(Andy Wallace)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신기하다.
과거에도 그라임스에게서 간혹 비디오 게임의 이미지 같은 요소들을 캐치해낼 수 있었는데 LA에서 열린 게임 어워즈(The Game Awards)에서 '4ÆM'의 공연을 선보였고 이는 유튜브에서도 생중계됐다. 인도 영화 [Bajirao Mastani]의 수록 곡 'Deewani Mastani'의 이국적인 멜로디를 샘플링하고 그 위에 드럼 앤 베이스 리듬을 뒤섞어내면서 마치 탈빈 씽(Talvin Singh) 같은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 심지어는 바이올린과 벤조까지 등장하는 미드 템포 팝 트랙 'Delete Forever'는 전형적인 미국 팝 송처럼 완성됐다. 비디오에서 그라임스가 앉아있는 돌로 만들어진 의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 막바지에 테츠오가 앉아 있는 의자 같기도 하며, 일전에 그라임스가 언급했던 타노스의 왕좌 같기도 하다. 대중 친화적인 'You'll Miss Me When I'm Not Around' 같은 곡에서도 확실히 그녀의 팝 적인 감각을 인지할 수 있다. 이 노래들에서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데드마우스(deadmau5)의 레이블 마우스트랩(mau5trap)에 소속된 i_o와의 공동으로 작업한 'Violence' 또한 일찌감치 들어볼 수 있었다. 신화에서 영향 받은 듯한 화려하고 감각적인 'Violence'의 비디오에서 그라임스는 [손자병법]을 읽고 있기도 하다.
[Art Angels]의 수록 곡 'Scream'에 피쳐링한 대만 출신 랩퍼 판(PAN)과 다시금 조우한 트랙 'Darkseid'는 마치 스눕 독(Snoop Dogg)의 'Drop It Like It's Hot'의 그라임스 버전처럼 전개된다. 느리게 가라앉는 듯한 기분의 'Before the Fever'의 믹스 경우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등을 다뤄왔던 교포 출신 DJ/프로듀서 노사즈 씽(Nosaj Thing)이 담당한 트랙이기도 하다. 일전의 앤디 월러스의 경우도 그렇고 이번 앨범의 경우 자신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한편 마치 믹싱 엔지니어들을 프로듀서처럼 활용해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IDORU' 같은 곡은 [Visions] 시절의 분위기와 리버브가 고스란히 묻어 있어 반갑다.
그라임스가 지닌 고딕적인 면모, 그리고 꿈꾸는 듯한 사운드는 여전히 이어진다. 이질감, 불일치, 그리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이 이상한 울림을 만들어내며 균형이라고 칭하기에는 좀 애매한 아무튼 전례 없는 기이한 균형감각을 통해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만끽하게끔 유도해낸다. 전형적인 팝의 테두리를 무시하고 뛰쳐나온 듯한 감각들은 기존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넓은 청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소리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