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52hz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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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평점 4/ 6명
  • 발매일 : 2021.08.06
  • 발매사 : ㈜뮤직앤뉴
  • 기획사 : STUDIO OPC
박정훈 [52HZ] 음반소개문
 
1989년에 발견된 주파수가 하나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한계에 간신히 걸친 52헤르츠의 이 소리는 미 해군에게 포착된 이래로, 계절이 추워져갈 때마다 북태평양 동안에서 길게는 10,000km 되는 지역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햇빛마저 닿지 않는 해저 2,000m 지점보다도 두 배는 되는 평균 수심을 자랑하는 북태평양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52헤르츠의 소리를 따라, 천천히 아래로 또 아래로 빠져들어 간다고 상상해보자. 그것이 아마도 [52HZ]를 향해 들어가 보는 입구가 될 것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속 기억을 지우는 회사에 영감을 받아 YUNINI와 함께 발매한 [Lacuna Inc.]에서 흐려지고 뒤섞여가는 기억을 닮은 변화무쌍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프로듀서 박정훈의 새 EP [52HZ]에는 동명의 마지막 곡 “52hz”로까지 내려가 닿는 인스투르멘탈 트랙 여섯 곡이 담겨있다. 짧지만 분명한 이 여정은 가장 어두운 곳까지 침잠하는 이야기를 조금씩 달라져 가는 여러 빛깔과 흐름의 소리로 풀어낸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해저에는 빛이 덜 들어오고, 점차 늘어나는 물의 양에 따라 수압이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주위 환경 또한 점차 생존에 적대적으로 변해가고, 빛이 거의 없어지기에 사물 또한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불분명함 속에서 생겨나는 불안한 감정과 요동치는 상상력의 단서는 음반을 여는 “TRIP”에서부터 나타난다. 여행의 도입부에서 편안히 시작하는 건반 연주는 어느 정도 부드럽게 다듬어진 신스음과 겹쳐져 진행된다. 다만 이러한 사운드 자체가 한 차례 파르르 떨려오며 묘한 어긋남이 만들어지는데, 여태껏 분명했던 소리가 차차 흐려지며, 차분히 울렸던 잔음은 자연스럽게 EP 전체에 깔린 묘한 모호함과 변화무쌍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13,30”이 도입부부터 “TRIP”과는 상반되게 날카롭게 지글거리는 소리들로 곧장 돌변하는 것이 그렇다. 비틀거리는 브레이크비트와 특히나 부글거리는 베이스가 두드러지는 비트 속에서 그 혼란스러운 파장의 세기가 더욱 키워진다. 뒤편으로 들려오는 여러 크고 작은 효과음들은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돌아다니는 바다, 혹은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오가는 마음 상태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그러한 소리들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는 있지만, 이미 여정은 중간 지점으로 돌입하고 있다. 
 
쿵쿵 떨어지는 “13,30”의 베이스음에 뒤이어 찾아오는 “BREACHING”에서는 복잡한 소리들이 모두 사라지고, 문득 몇 줄기의 잡음과 소음들이 멀리서부터 밀려온다. 흥미롭게도 이전에도 살짝 들렸던 리프가 이 곡에서도 등장하는데, 어떻게 들리느냐에 따라 두 트랙이 가져오는 감흥이 꽤나 달라진다. 마치 물속에 잠긴 듯 꽉 막히고 조그맣게 들려오는 이 리프는 “13,30”에서는 자그맣게 등장하지만 분명히 인지할 수 있던 것에 비해 훨씬 더 모호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이 애매함은 “BREACHING”이 계속 진행되면서 리프가 서서히 맑고 명확하게 뒤바뀌는 것에서 한 번 더 꼬아지는데, 이렇게 [52HZ]의 중반은 하나의 리프를 변주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전환하며 연결되는 동시에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간다. 앞선 트랙에서는 다양한 소리들 속에 나중에 등장할 단서를 쥐어 주고, 뒤따른 트랙에서 이를 다시금 명확하게 불러오면서 느슨한 연관성과 변주된 차이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렇게 동일한 공통항을 쥐고 연속되지만 주위의 풍경이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모습은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급변하는 해류를 닮은 듯싶기도 하다. 
 
여기까지 다다르면 어둡고 답답한 바다의 안쪽이 익숙해지지 않았으려니 싶겠지만, 예상치 못하게도 “DELTA”에서는 그나마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특징적인 멜로디나 음색 대신, 38초간의 저주파 음이 찾아온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솟아 올라와 트랙 전체를 두껍게 덮어버리는 그 낯선 진동은 다시금 52헤르츠의 주파수를 떠오르게 한다. 태평양 북동쪽에서 몇 달씩 울려 퍼지는 이 원인 모를 소리의 정체 중에서는 특정한 고래가 내는 소리라는 설이 있다. 빛이 희박하기에 광대한 바닷물을 매질로 삼아 소리의 가장 기초적인 떨림을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는 고유한 주파수가 필요하다. 그에 비해 이 52헤르츠는, 일반적인 고래들이 사용하는 진동수보다 두 어 배가량 더 높아 다른 고래들에게는 전혀 닿을 수 없다고 추정된다. “DELTA”를 꽉 채우고 있는 소리가 어떠한 ‘사운드’적인 특징들을 똑바로 인지할 수 있다기보다는 낮게 울려 퍼지는 둔중한 진동처럼 들리는 것은 차라리 깊숙한 심해에 낮게 자리 잡은 배경음을 닮아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고래가 내는 것만 같은 다른 소리들이 서서히 솟아올라오고, 우리는 그 소리들을 매우 확실히 들을 수 있으며, 어쩌면 그 중에서 52헤르츠의 진동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DELTA”의 소리들이 곧 EP의 마지막을 향해 더욱 깊숙하게 잠겨 들어가는 물길을 열어준다. 
 
그렇게 등장하는 “TORCH”는 조금씩 상승하는 신스 리프를 반복시키며 차분해진 속도로 박자를 밀고 당긴다. 멈칫멈칫하는 드럼 비트가 트랙의 시간을 진행시키면서 두꺼운 신스와 전기 기타의 리프가 빛줄기처럼 주된 멜로디를 안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덧 그마저도 사라진다. 트랙의 처음부터 등장하던 반복적인 신스 리프가 다시 한 번 서서히 흐려지며, EP는 마침내 “52hz”로 닿게 된다. 직전 트랙에서 고조된 긴장을 지글거리는 전기 기타와 함께 풀어가며 시작되는 [52HZ]의 마지막은 지금까지의 여정을 한 트랙 안에서 재구성하듯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베이스음이 넘실대는 그루브를 단단하고 낮게 울리는 지반으로 만들고, 반복적인 드럼 비트 위편에 들어오는 날카로운 전기 기타 소리가 주된 모티프로 작용하며 텐션을 끌어올린다. 그에 맞춘 잡음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며 이 긴장을 조금 더 옥죄이는 것 같을 때, 문득 차갑게 가라앉으며 부각되는 한 줄기의 신스음, 그리고 놀랍게도 잠수정의 레이더처럼 들리는 소리가 깜빡거리듯 “52hz”의 공간을 뚫고 간다. 산소가 희박한 채 극단적인 압력과 심각한 어둠으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로 그려지곤 하는 ‘심해’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52HZ]의 이러한 마지막 구간들은 꽤나 역동적으로 들린다. 
 
이는 아무리 탐구력과 상상력을 발휘해보아도, 심해가 대부분 미지의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과 이어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우리의 지각과 상상만으로는 얼마 못 가 한계에 부딪혀버릴 바닷속을 단순히 고요한 불모의 공간이나, 이해불가능한 공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그런 심해에서마저도 오랫동안 존재해왔고 분명하게 존재하는 심해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게 밝혀졌으며, 인간의 매우 한정된 능력으로는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결국 전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이를 “52hz”와 연결하며 상상력의 방향을 돌려본다면, 새까맣고 묵직한 몇 천 미터의 해저에서도 이토록 역동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 셈이다. 어쩌면 그것이 [52HZ]에서 펼쳐지는 잠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여러 소리들이 사라지고, 적막한 침묵 속에서 울리는 잔음이 잠깐의 유예를 마련해주며 곡이 끝나는가 싶더니, 기존의 소리를 다시 한 번 세게 반복하면서 끝까지 반복의 미세한 변주가 만들어내는 긴장을 놓지 않는 마무리까지 생각해보면 더욱이나 그렇고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쓴 내용들은 [52HZ]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의 광경을 상상력을 발휘해 심해로 빠져들어 가는 이미지와 연결해본 것으로, 굳이 바다뿐만이 아니라 이해가 닿지 않는 깊숙한 어딘가로 향하는 모든 과정을 대입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인식 능력과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부터, 그 시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지의 지대들, 여기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분명함과 불안감, 그리고 공포까지.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꽤 역동적일지도 모를 생태는 심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바닷속에서 어쩌면 홀로 52헤르츠의 주파수를 내뿜는 고래에게서 상상해볼 수 있는 거대한 고독감은, [52HZ]를 듣고 생각해보는 또 다른 경로를 열어줄지도 모르겠다. 이 고래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이 52헤르츠의 주파수를 방출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웹진 weiv 필진)
 
 
[Credit]
52Hz
 
1. TRIP 
Composed by 박정훈 
Arranged by 박정훈 AHMN
 
Piano AHMN
SYNTH 박정훈
 
 
2. 13,30
Composed by 박정훈 
Arranged by 박정훈
All instruments 박정훈
 
 
3. BREACHING
Composed by 박정훈 
Arranged by 박정훈
All instruments 박정훈
 
 
4. DELTA
Composed by 박정훈 
Arranged by 박정훈
All instruments 박정훈
 
 
5. TORCH
Composed by 박정훈 
Arranged by 박정훈
All instruments 박정훈
 
 
6. 52hz
Composed by 박정훈 
Arranged by 박정훈
All instruments 박정훈
 
[All Credit]
 
Executive Producer/ 박정훈
Mixed by 박정훈 (STUDIO OPC) 
Masterd by Jake Viator @Stonesthrow Records
Artwork by TOSUNAND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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