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A LA SALA
Khruang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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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평점 5/ 3명
  • 발매일 : 2024.04.05
  • 발매사 : 리플레이뮤직
  • 기획사 : Dead Oceans
전세계 모든 음악을 가로지르는 싸이키델릭 트리오
크루앙빈(Khruangbin) 새 앨범 [A LA SALA]

크루앙빈은 현재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이다. 그들의 노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시작된 이 밴드의 이름 '크루앙빈'은 태국어로 ‘비행기’를 의미하는데, 이처럼 이들은 음악 안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요소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영리하게 체득해내면서 전세계로 뻗어 나간다.

크루앙빈은 레게와 에티오피아 재즈, 터키 싸이키델리아, 동남아시아 팝, 라틴 아메리카의 쿰비아 등 어느 것에도 매몰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지역 특산물들을 포괄해왔다. 그 결과 싸이키델릭 하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매혹적인 색을 갖추게 됐고 밴드의 경력이 10년 이상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을 특정 짓거나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는 아마도 밴드가 의도한 방향일 것이다.

태국 훵크에 영향받은 2015년 작 [The Universe Smiles Upon You],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 아시아에 영향받은 2018년 작 [Con Todo El Mundo]가 연달아 성공을 거뒀고, 2020년에 발매한 [Mordechai]의 경우 UK 차트 7위에 오르며 점차 규모를 키워 갔다. 리온 브릿지스(Leon Bridges), 그리고 사하라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라 불리는 뷰 팔카 투레(Vieux Farka Touré) 등과 합작을 내놓기도 했으며, 2023년 말에는 라이브 앨범 [Live at Sydney Opera House]를 발표하면서 바쁜 행보를 이어갔다.

문자 그대로 전세계 음악 신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는 크루앙빈이 국내와의 연결고리가 없을 리 만무한데, 인기 컴필 시리즈 [Late Night Tales]에서는 산울림의 '가지마'를 선곡했으며, 2022년 내한 당시에는 앵콜로 ‘아리랑’을 커버하면서 치사량의 국뽕을 주입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전 세계를 돌고 돌아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그린 네 번째 정규 작
[A LA SALA]

앨범의 제목 [A LA SALA]는 스페인어로 "방으로(To the Room)"라는 뜻인데, 과거 이들이 냈던 덥 앨범 [Hasta El Cielo]에 같은 제목의 곡이 삽입된 바 있다. 전세계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보다 개인적인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스스로의 시작점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고 이는 어떤 원점, 혹은 일체감을 상징한다. 그러면서 앨범은 크루앙빈 사상 최초로 게스트가 없는 작품이 됐다. 앨범의 제목처럼 고향의 방 혹은 거실에 위치하고 있지만 공상에 빠지는 태도는 잊지 않고 있다.

앨범의 리드 싱글 'A Love International'이 미리 공개되면서 팬들로 하여금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품게끔 했다. 곡은 라틴 풍의 부드러운 멜로디, 그리고 미니멀한 리듬을 바탕으로 언제나 그렇듯 행복한 여행으로 안내하고 있다. 여행을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는 곡의 비디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의심할 여지없이 온화한 편안함으로 가득한 'Fifteen Fifty-Three'로 앨범이 시작된다. 'Three From Two'와 보컬이 있는 트랙 'May Ninth'는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의 강변 사이 어딘 가에 위치한 듯한 아련한 미드 템포 트랙으로 자신들의 또 다른 핵심 가치는 바로 미국 음악이라는 듯한 암시가 있어 오히려 재미있다. 스파게티 웨스턴 풍의 'Ada Jean', 그리고 비트가 없는 트랙들인 'Farolim de Felgueiras'와 'Caja de la Sala'에서는 기타와 무그의 조화, 무엇보다 여백이 두드러지는 배치가 평화롭게 흘러간다.

서아프리카 디스코텍을 연상시키는 'Pon Pón'의 경우 전세계 각국의 언어로 숫자를 읊는 것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한국어 "하나"와 "열 셋" 또한 확인할 수 있다. DJ의 림샷과 함께 느와르 풍의 분위기가 전개되는 'Todavía Viva', 탄탄한 리듬 섹션을 바탕으로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훵크 트랙 'Hold Me Up (Thank You)' 그리고 단순한 피아노와 애처로운 기타가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곡 'Les Petits Gris'를 끝으로 앨범이 종결된다.

우리가 크루앙빈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적은 악기로 풍부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깊이 있는 구성과 독특한 프로듀싱 또한 여전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들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훵키한 베이스 라인과 메트로놈 같은 드럼, 그리고 빈티지한 기타 톤 등 이전 작들과 큰 변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만의 스타일은 더욱 견고히 해냈고 그런 와중 발현된 창의성과 독창성에 한계가 없음을 밴드는 새삼 증명하고 있다. 특정 악기에 힘을 주거나 압도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지나치게 절제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한 밸런스를 크루앙빈은 고수해낸다. 일관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능력이 감탄스럽다.

"5월을 기다린다"는 가사의 'May Ninth'처럼 곧 다가올 봄, 그리고 여름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앨범이다. 과거 이들은 서구 음악이 전 세계의 표준이되면서 "월드 뮤직"이라는 말 자체가 타자화를 요약한 것이라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 앨범의 경우 그 서구의 음악 또한 정밀하게 녹여낸 한편 이들의 핵심인 신비로움과 신성한 분위기 또한 확장 시켜냈다. 그러니까 뻔한 서구 음악이냐, 혹은 서구를 제외한 월드 뮤직이냐의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 크루앙빈은 보다 멀리 가기 위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 했다. 자신들의 다양한 사운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한편 경계를 넓히고 있는 앨범 [A La Sala]는 오직 크루앙빈이 추출해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증류수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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