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Maybe Our Story
Virgi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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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평점 4.5/ 25명
  • 발매일 : 2012.06.12
  • 발매사 : Mirrorball Music(미러볼뮤직)
  • 기획사 : YMEA Records

'무엇'을 갈망하는 어른들의 애타는 밤에 바치는 앨범
버진 랩(Virgin Lab)의 [Maybe Our Story]


버진 랩. 번역하면 처녀 연구소다. 망측하다. "Let's Take a Break"의 스킷을 들어보자. 한 남성이 모텔로 짐작되는 곳에서 '대실'이 가능하냐 묻는다. 대실? 그건 성인남녀가 '무엇'을 하기 위해 모텔방을 잠시 빌리는 일 아닌가. 여기서 '무엇'이 '무엇'인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그 성스러운 행위를 차마 어떻게 여기서 설명하리. 버진 랩은 바로 입에 올릴 수 없는 '무엇'에 대한 노래를 하는 불경스러운 일렉트로닉 뮤직 밴드다. 어쩌다 이들은 이렇게 음탕하고 불량한 음악을 하게 되었을까. 일단 그 연원을 파헤쳐 보자. 깨달음을 주는 이는 늘 반면교사 아니던가.

버진 랩의 멤버는 YMEA(Young Men Electronic Association)의 파운더 황박사와 클래식을 공부하는 오세륜이다. 저 얄쌍한 콧수염을 보니 딱 봐도 황박사는 변태임이 분명하고 오세륜의 매끈한 외모는 여태껏 꽤 많은 여성을 홀렸음을 짐작하게 한다. 얼굴을 봤으니 뒤도 살펴보자. 황박사가 만들었다는 YMEA는 이름 그대로 젊은 일렉트로닉 음악가의 모임이다. 지금까지 80's Illusion과 The Young Violent Pony와 같은 80년대 디스코(Disco)가 넘쳐 흐르는 파티를 진행해왔다. 디스코? 디스코라 함은 향락과 퇴폐의 상징과도 같은 음악 아닌가. '토요일 밤의 열기'로 시작된 디스코 붐은 한국에도 퍼져 80년대 불량한 남녀들은 어두침침한 나이트클럽에서 디스코를 추며 짝짓기에 열중하곤 했다. 그런 음탕한 음악이 흐르는 디스코 파티를 주도해온 YMEA의 수장이 바로 황박사다. 그렇다면 오세륜은? 클래식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음악인데… 아하. 보니까 딱 각이 나온다. 얌전히 클래식 공부를 하던 오세륜을 황박사가 접근해 퇴폐적인 디스코 음악으로 물들인 것이다. 아무래도 본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선 준수하게 생긴 멤버 한 명쯤은 필요했을 테니까. 이렇게 모인 버진 랩의 음악적 기반은 산술적으로 따지면 디스코와 클래식이다.

근데 이들이 첫 발매한 EP [Maybe Our Story]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칠웨이브(Chillwave)란다. 아니 칠웨이브는 또 뭔가. 칠웨이브는 요즘 전 세계 힙스터 사이에서 유행하는 음악 장르다. 뿌연 사운드와 멀리서 들리는 듯한 보컬, 울렁울렁거리는 독특한 그루브 감, 이국적이면서도 적당히 세련된 음악을 뭉뚱그려 대강 칠웨이브로 분류한다. 디스코/훵크/클래식을 거쳐 칠웨이브가 나왔다니. 역시 변태스럽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에 디스코와 훵크의 존재감이 없진 않다. "Let's Take a Break"나 "Three Legged"의 넘실거리는 베이스는 디스코와 훵크라는 나무에서 가지를 쳐 가져온 게 분명하다. 칠웨이브는 장르라기보다 음악을 해석하는 태도에 가깝다. 왓보다는 하우에 방점이 찍힌 음악이란 얘기다. 버진 랩의 음악은 디스코 사운드의 적절한 도입이라는 측면에서 초기 시절의 워시드 아웃과 네온 인디안(Neon Indian) 그리고 [Underneath the Pine]을 발표한 이후의 토로 이 모아(Toro y Moi)를 연상시킨다. '초기'와 '최근'이라는 수식을 쓰는 이유는 이들의 음악이 꾸준히 변하고 있기 때문인데 칠웨이브를 태도에 가깝다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버진 랩은 디스코/훵크/클래식에 영향을 받은 칠웨이브 밴드다. 퇴폐적이지만 우아하고 '힙'한 음악을 들려준다. 이름대로 바람둥이가 여자를 꼬시기 위해 만든 밴드인 것이다. 여자를 꼬실 때 음악만큼 좋은 게 또 있겠는가. 그래. 어디 그럼 (어디까지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이들이 펼치는 기술을 파헤쳐볼까나. 음... 근데 들어보니 생각만큼 이들이 선수처럼 보이진 않는다. "Let's Tae a Break"의 스킷에서 이들은 3만 5천 원을 요구하는 모텔리어 앞에서 3만 원 밖에 없다며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등장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묘사는 실제를 묘사한다기보단 상상의 대상을 그리는 걸로 보인다. 여성의 입장에서 하룻밤의 '무엇'을 노래하는 "Skins Talk"를 들어보자. 상대 남성의 외로움에 공감하며 하룻밤 이후의 이별을 다짐하는 여성상은 아무리 봐도 여성의 입장으론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에 가깝지 않나. 어쩌면 이들은 바람둥이라기보다 바람둥이가 되고 싶어 하는 소심한 음악가들인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이들이 음탕하게 보이기보단 슬슬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 아! 이러면 안 되는 데. 감히 성스러운 '무엇'을 입 밖에 내어 노래하는 이들의 악마적인 습성을 하나라도 더 까발려야 하는데. 근데 이를 까발리기 위해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니 자꾸 공감되고 빠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이 '무엇'을 갈망하는 외로운 청춘이란 말이던가.

게다가 이들은 비록 여자 앞에서는 소심한 청춘이지만 주변 음악가들에게는 좋은 동료인 것 같다. 한국 일렉트로닉 신의 뉴웨이브를 이끌고 있는 소년(Sonyeon)과 히든 플라스틱(Hidden Plastic)이 각각 "Three Legged"와 "Midnight Journey"의 리믹스를 맡았다. 소년의 "Three Legged(Sonyeon Remix)"는 원곡을 탈수기에 돌린 뒤 bpm을 25정도 늘려 놓고 온갖 애시드한 소리로 그루브를 이은 트랙으로 버진 랩이 클럽에서도 여자를 꼬실 수 있도록 고안된 듯하다. 히든 플라스틱의 "Midnight Journey(Hidden Plastic Remix)"는 본인들의 곡에서 쓰인 특유의 그루브한 신서사이즈 찹과 버진 랩의 스펙트럼 중 디스코에 돋보기를 갖다 댄 트랙이다. 히든 플라스틱의 청량한 사운드가 버진 랩의 에로틱한 사운드와 만났는데 어찌 여자들이 넘어오지 않고 버티리. 이 정도면 뉴클리어 밤이다. 쾅!

어덜트 콘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라는 장르가 있다. '어른'과 '동시대'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장르는 어른들이 듣기 좋은 말랑말랑한 팝 음악을 일컫는다. 어찌 보면 버진 랩의 음악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어른을 위한 어덜트 콘템포러리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탈로 디스코(Italo Disco)의 아버지 조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의 음악을 듣고 자라 남중, 남고를 거쳐 제대로 여자들과 얘기 나눠 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동급생'으로 여성에 대한 환타지를 키워 온. 드디어 대학교에 들어가 여자 한번 꼬셔볼까 해도 스펙과 취업에 치여 여전히 '무엇'을 '무엇'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어른 남성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진 랩의 음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에게 위로를 던지는 음악이다. '무엇'이 하고 싶은데, 참, 하고 싶은데 말로 표현을 못 하겠는 그런. 물론 버진 랩의 음악은 여성이 들어도 좋다. 애초에 여성을 꼬시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니. 원래 현실 세계에선 꺼려지는 소심하고 지질한 모습이 음악으로 표현되면 귀엽게 들리고 그러지 않나. 버진 랩과 몸을 섞고 싶을진 몰라도 귀는 섞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과연 버진 랩이 꿈꾸는 저출산 시대 극복은 가능할까. 오늘도 깊어가는 '무엇'을 하기 위한 어른들의 밤은 깊어간다. 버진 랩의 음악은 그 애타는 밤에 바치는 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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