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Guiding Light
잭 리 (Jac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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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평점 4/ 21명
  • 발매일 : 2012.09.26
  • 발매사 : (주)지니뮤직
  • 기획사 : JL Music
JACK LEE [Guiding Light]
 
개인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뮤지션이 적지 않지만, 필자같이 글로 음악에 대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와 직접 음을 울리고 그 멜로디를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표출하는 뮤지션 사이에 어딘가 모를 벽이 있다. 기만하지 않고, 딱 들을 수 있고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음악을 창조하는 음악가와 이해하고 알고 있는 범위까지만 글을 풀어가야 하는 작가들 사이에 '대체 뭘 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는거야!'라는 푸념 아닌 푸념과 그 사이의 오해와 질시 알력 등이 알게 모르게 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뮤지션들의 라이너 노트를 쓰면서 느끼는 실제적 곤란함은, 익히 알고 있던 그들의 음악에 대한 기대치를 거듭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기대치가 있고, 또한 취향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소개자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 미사여구와 온갖 수식어로 도배된다면 이 또한 뮤지션, 소개자 모두에게 불편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잭 리의 음악이나 새앨범 [Guiding Light]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들을 서두에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 그의 오랜 팬이면서도 처음으로 라이너 노트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한 번쯤은 풀어놓고 싶은 바였다.
 
잭 리는 국내에서 보다는 미국 본토와 일본, 브라질 등 해외에서 지명도가 높고, 상당한 인맥과 이에 걸 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뮤지션이다. 몇 몇 단편적인 기술을 통해 특정 뮤지션의 수 십 년을 짧게 서술하기는 어렵다. 우선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아 제대로 알 수도 없거니와, 멜로디와 리듬을 통해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영역이란 극히 일부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그 일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잭 리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92년경으로 기억한다. 그의 두 번째 앨범인 [목련꽃]은 비밥 혹은 일렉트릭 퓨전에 익숙해 있던 귀에는 어떤 새로움을 선사해주었다. 적당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잔향조차도 자연스럽게 처리된 훌륭한 레코딩과 투명한 기타 톤에서 흘러나온 정숙한 멜로디 라인은 신선한 감흥이었다. 이 같은 플레이 스타일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 한 복판에서 벗어나 전원이나 해변에서 음미하는 자연의 향의 차이라 할까? 팻 메스니나 밀톤 나시멘토 등에서 듣던 파문들이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그 어떤 뮤지션이라도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자신감 또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터이다. 그 중에 음의 울림과 지속되는 선율로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종류의 뮤지션이라면 잭 리 역시 이 같은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잭 리는 토니뇨 오르타, 밥 제임스, 와타나베 카즈미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유수 뮤지션들과 음반작업과 공연을 펼쳐왔다. 상대방의 이름에 주눅이 든 상태에서 음반을 취입했을 리도 없고, 컨셉이나 방향성의 설정은 개인 자유의지이자 그 시점의 목표에 대한 선택이기에 이 부분을 왈가왈부 할 생각도, 달리 비교할 필요도 없다고 여겨진다.
 
이번 앨범 [Guiding Light]에는, 찰스 블랜직, 멜빈 데이비스, 테츠오 사쿠리이 등 미국과 일본의 일급 뮤지션들의 면면들이 보이지만, 연령이나 경력에서 잭 리와 격차가 큰 편은 아니다. 인선 자체로 판단한다면, 본인이 선택한 뮤지션으로, 원하는 음악을 자신의 주도 하에 펼쳐가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컨셉이다. 서울, 태국, 일본 등 3개국 4개의 스튜디오에서 약 2년에 걸쳐 녹음하였는데, 극히 위축된 음반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레코딩이나 세션은 과잉(?)에 가까울 만큼 호화롭다.
 
첫 번째 "Guiding Light"는 부유하는 심벌과 함께 동그란 곡선의 기타 톤이 영롱하게 울려 퍼지며 시작된다. 포크적 요소와 멜로디 반복적 상승, 그리고 즉흥연주 파트에서 리듬과 음표를 바쁘게 뿌리면서도, 선율 속에서 테마의 감각이 그대로 유지되는 안정되며 뭉클한 연주가 펼쳐진다. 두 번째 "Rain Song"은 자글거리는 타악기와 하모닉스의 짧고 입체적인 도입부가 인상적이며, 연주는 다소 담담한 형태로 진행된다. 약간은 건조한 톤과 정적인 상황에서 물결같이 이어지는8분음표의 기타 솔로가 담백하고 낭만적이다.
 
세 번째 "StarPark"는 리듬이 강하게 바운스되며, 기타와 색소폰의 유니즌에서 벌써 다이내믹한 기운이 발산된다. 마이클 브레커와 함께 EWI(Electric Woodwind Instrument)의 개발에 참여하며, 이 악기의 선구자로 유명한 노리히토 스미토모는 마이클 브레커를 연상케 할 만큼 힘차고 테크니컬하며 금속성의 톤에 빠듯한 즉흥연주를 구사한다. 트랙 말미에서 기타, 피아노, 드럼이 동시 진행되는 프리한 질주는 상당한 쾌감을 선사한다.
 
네 번째 "Snow Smiles"는 어커스틱 기타에 의한 발라드로, 아름다움과 무드에 녹아 드는 배킹, 서정성 등 잭 리가 지닌 기타 미학을 깊게 이끌어내고 있다. 다섯 번째 "6:00 AM"은 팝재즈에 가까운 가벼운 터치로, 블루지한 필링과 조금씩 빠져나가는 라인들이 피부를 간질이는 같은 묘한 자극을 준다. 여섯 번째 "Last Scene"는 사토 요시아키의 아코디온과 기타가 조용히 속삭이듯 상호 대화를 주고받는다. 잔잔하면서 아코디온 특유의 구성진 음색이 깨끗한 기타톤과의 상성이 좋다.
 
일곱 번째 "Nevis"는 잭 리와 Ed Maguire의 공작이다. 기존의 비밥과 퓨전에서 한발 나아간 하모니에 대한 진지하고 숙고한 흔적이 나타난다. 정갈하고 깨끗하며, 아웃을 이탈로 생각하지 못할 만큼 섬세한 감정들이 살아있다. 학구적인 면모를 띈다 하기 보다는 잭 리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형태라 하겠다.
 
여덟 번째 "Julia"는 비틀즈의 White Album에 수록된 곡으로, 앨범 자체는 비틀즈의 실험성을 대표하지만 존 레논 모친에 바친 이 곡은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 잭 리와 찰스 블랜직은 음악의 이론 차원을 떠나 장기간 호흡한 굳건한 파트너와 친구로서의 우정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참고로 줄리아는 찰스 블랜직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홉 번째 "Bons Amigos"는 잭 리 음악적 동료이자 스승인 토니뇨 오르타 원곡으로 나른하면서 따사로운 보사노바 리듬과 음의 엑기스만 추출한 듯한 간결하면서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한 하모니를 펼친다. 열 번째 "You and I"는 스티비 원더의 "You and I", "Julia"와 함께 찰스 블랜직과의 듀오 연주이다. 하모니, 멜로디, 리듬의 동시표현이 가능한 기타와 피아노인데, 상호 한 발 물러나 서로의 연주를 음미하고, 화두 삼아서 인터플레이를 주고받으며 이들만의 세계에서 각자의 감정을 소담스럽게 담고 있다.
 
오프닝이었던 "Guiding Light"의 메인테마는 16마디 이후 섹션 파트를 잭 리가 작곡한 것으로 공동작업에 해당하지만, 마지막 "In Guiding Light"는 스미토모 작곡이다. 오프닝 보다 느린 템포로 설정되어 있으며, 테마 도입부에서 색소폰과 신쎄사이즈로 인해 몽환적이고 신비주의적 색채까지 풍긴다.
 
주제부를 풍부한 색채와 리듬으로 완벽하게 즉흥연주를 자유롭게로 확연히 구분하는 팻 메스니를 떠올릴 정도로 불가사의한 사운드에 이어 불꽃 같은 기타 즉흥연주가 흘러나온다. 앨범 자체가 처음과 끝의 연결을 염두하여 두고 있는데, 마지막 트랙에서 테마 즉흥연주 테마와 화려한 편곡과 즉흥연연주의 동시진행이라는 이상적이고 인상적인 결말을 맺는다.
 
[Guiding Light]은 수미쌍관 형태로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되어 총 11트랙, 60여분으로 구성된 짧지도, 길지도 않은 러닝 타임이며 디스토션 없이 클린톤과 어커스틱의 깨끗한 톤들이 전체를 지배한다. 솔로에 있어 짧은 동기 단위로 분절되지 않고 코러스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형성하거나, 달콤함 속에 아웃의 긴장을 담아내는 점 등에서 메스니의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잭 리 자신도 이 점을 크게 부정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앨범에 사용된 메인 기타가 팻 메스니에 선물 받은 아이보리색 아이바네즈 PM(Pat Metheny)모델이기에 더욱 강한 연결고리가 연상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밀한 작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최대한 세심하고 완벽한 사운드를 구현하고자 하면서, 인터플레이와 솔로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지닌 기량을 펼치고 지금까지의 축적된 음악적 고민을 고스란히 담은 '나의 앨범'이라는 주장이 확실히 강한 작품이다. 20년이 넘는 활동을 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했느냐에 대해 이 앨범으로 충분한 답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진행이고, 그 세월만큼의 흔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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