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 앨범 평점 4/ 80명
- 발매일 : 2014.01.01
- 발매사 : Universal Music Group
- 기획사 : Walt Disney Records
[DCONSTRUCTED]
'Deconstructed', 해석하면 '해체됐다'는 뜻이다. 만화영화의 왕국 디즈니가 왜 이런 제목을 사용했을까. 이유는, 정말로 '해체'했기 때문이다. [Dconstructed]는 디즈니 영화들의 주요 테마를 EDM으로 리믹스한 앨범이다. 리믹스는 리메이크와 달리 곡의 특정 부분만을 남겨놓고 완전히 다른 비트와 베이스라인이 들어간다. 기존 곡이 '해체'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만화 주제가가 거친 일렉트로 하우스, 덥스텝으로 바뀌는 것도 파격적인 반전이다. EDM 편곡이 유행이라곤 하지만 그게 '디즈니'와 만날 거라곤 누가 상상했겠는가.
물론 디즈니가 파격적인 음악 노선을 걸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론: 새로운 시작(TRON:Legacy)]는 게임기 속 가상현실에 관한 영화였던 만큼 사운드트랙 역시 일렉트로닉 음악의 리더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맡았다. 전통적인 오케스트라 위주의 스코어 대신 어둡고 강렬한 톤의 신시사이저가 사용되면서 영화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이전 디즈니 작품들과는 큰 괴리를 만들어냈다. 아예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같은 '록' 스타들을 키워 내기도 했다. 10대들은 더 이상 뮤지컬 음악으로만 만족하지 않았고, 시대의 변화는 '록 음악 레이블' 디즈니를 탄생케 했다. 조나스 브라더스의 팬들이 비틀스(The Beatles)의 광 팬을 일컫는 '비틀 매니아'와 비교될 정도였으니 디즈니가 음악 사업에서 '한 건 올렸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것도 예전의 보드빌, 재즈, 뮤지컬 음악이 아니고서 말이다.
물론 디즈니는 과거의 노선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2014년 [겨울 왕국]은 뮤지컬 가수 이디나 멘젤(Idina Menzel)을 기용해 만든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선보인 단편에선 디즈니가 예전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 과감한 자기 패러디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달라졌으니 그들도 달라지겠단 것일까? [Dconstructed]는 이처럼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디즈니의 또 다른 자기 패러디와 실험이 아닐까 싶다.
컨셉만으로도 귀가 솔깃할 앨범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Deconstructed]에는 EDM 팬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가장 인기 있는 프로듀서/디제이들이 참여했다. 영원한 트랜스의 큰 형 아민 반 뷰렌(Armin Van Buuren), 어린 EDM 슈퍼스타 아비치(Avicii), 아름다운 프로그레시브의 1인자 캐스케이드(Kaskade),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의 악스웰(Axwell)과 세바스찬 잉그로소(Sebastian Ingrosso)도 참여했다. 현재 일렉트로닉 음악을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뭉쳐서 만든 재미있는 컨셉 앨범으로 들어도 무방하다. 장르도 일렉트로 하우스, 프로그레시브, 덥스텝, 드럼 앤 베이스 등으로 다양하다.
앨범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재즈, 오케스트가 원곡이란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여기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자신감 있게 원래의 스타일을 그대로 밀어 부쳤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할 [겨울왕국(Frozen)]의 "Let it go"는 아민 반 뷰렌의 양보 없는 하드 트랜스 그루브로 완전히 새로운 곡이 됐다. 브레이크다운에 이디나 멘젤의 목소리가 삽입된 것 말고는 그냥 아민 반 뷰렌의 신곡으로 봐도 무방하다. [라이온 킹(Lion King)]의 가장 유명한 테마인 'Circle Of Life'도 원곡의 외침을 잠깐 들려주고는 점점 루프와 비트의 비중이 높아지다가 이내 드럼 앤 베이스로 변한다. "Circle Of Life"를 리믹스한 맷 조(Mat Zo)는 포터 로빈슨(Porter Robinson)과 작업한 아름다운 프로그레시브 'Easy'로 유명하지만, 이처럼 때때로 드럼 앤 베이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스톤브리지(StoneBridge)는 미키 마우스와 그의 애완견 플루토의 목소리를 샘플로 활용했다. 그의 'Hey pluto'는 전형적인 하우스 음악 패턴 위로 조각난 미키 마우스 소리가 들어가는 곡이다. 원작 배경음악들에 주로 쓰이던 재즈의 관악기, 베이스 라인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센스도 발휘했다. 샤이 키즈(Shy Kidx)도 [머펫 대소동(The Muppets)]의 'The Muppet Show Theme' 일부분을 가져다가 보컬 샘플로 활용했다. 과격한 베이스 소리에 어울리게 어둡게 변형했으며, 그래선지 인형들의 목소리가 귀엽고 우스꽝스런 원곡 이미지와 상반되게 무서운 괴물처럼 들리기도 한다. 트리온(Trion)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에서 오페라 가수 매리 코스타(Mary Costa)가 불렀던 명곡 'Once Upon A Dream'을 거친 일렉트로 하우스로 바꿨다.
이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들은 대부분 샘플링의 방식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사운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케스트라, 재즈, 어쿠스틱 원곡들을 가지고 리믹스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브레이크다운에 슬쩍 집어넣거나 잘게 쪼개서 리듬으로 활용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오래 전에 녹음된 곡들이라 보컬만 따로 떼어낸 아카펠라 트랙도 대부분 유실된 모양이고, 그래서 통으로 잘라내어 센스 있게 변형하는 것이 리믹스의 초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비치는 조금 다른 방식을 취했다. 그는 [트론: 새로운 시작]의 'Derezzed' 리믹스에서 원본을 잘라내 붙이기보다는 주요 테마를 다시 연주하고 보컬을 데려다 새로운 시너지까지 만들어냈다. 1분 44초의 짧은 테마를 5분대의 보컬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로 바꿔낸 그는, 작업을 마친 뒤 이런 후기를 남겼다. '전에도 한 번 다프트 펑크의 [트론: 새로운 시작] 음악을 리믹스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꽤 오래 전 일이네요. 그 덕분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내 경력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 음악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어서, 그리고 네진(Negin)의 목소리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릴 수 있어서 말이죠.'
'Baby Mine'의 리믹스도 인상적이다. 우리 안에 갇힌 어미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 덤보에게 불러주는 이 슬픈 테마는, 몽롱한 프로그레시브의 천재인 캐스케이드가 리믹스를 맡아 원곡과 가장 흡사한 감성을 전달한다. 아비치의 'Derezzed'와 마찬가지로 새롭게 보컬을 기용해 다시 녹음한 버전이다. 디즈니에겐 새로워질 계기를, EDM 팬들과 참여 아티스트들에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 앨범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Dconstructed]는 EDM이란 장르가 지금의 음악 산업 내에서 얼마나 핫한 위치인지 말해주는 앨범이다. 이 장르와의 콜라보는 항상 새로움, 트렌디함, 신세대와의 호흡, 진취적 변화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빌보드 상위권 댄스 아티스트들이 그랬고, 록 뮤지션들이 그랬으며, 이번엔 디즈니까지 나섰다. 앞으론 또 누가 될까. 혹시 디즈니 차기작의 OST는 디제이들이 맡는 건 아닐까. 다양한 상상과 얘깃거리를 주는 앨범이다. 적어도, 확실히 '해체'한 것만큼은 확실하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한 발 앞서가 뒷통수를 쳤다고 할까. 디즈니가 이럴 거라곤 누가 예상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