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 앨범 평점 3.5/ 57명
- 발매일 : 2015.04.15
- 발매사 : (주)디지탈레코드
- 기획사 : 다시, 봄 프로젝트
2015년 봄. 다시 봄입니다. 몇몇의 뮤지션들과 문화예술인이 모여 세월호를 기억하는 음반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다시, 봄] "다시, 봄" (작사/곡 사이 / 편곡 말로)
그 첫 번째 노래를 영상과 함께 발표합니다. 제목은 "다시, 봄" 입니다. 기울어진 봄... 변한 게 없는 봄... 질문하는 봄... 대답이 없는 봄... 부끄러운 봄... 기억하는 봄... 앞으로 한 달에 몇 곡 씩, 서너 달 동안 세월호를 기억하는 음원을 발표하고 오는 8월 세월호 500일이 되는 날, 음원을 모아 음반도 발표하고 공연도 가지려 합니다.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는 이들(강승원, 김목인, 말로, 요조, 박혜리, 사이, 정민아, 차현, 하이미스터메모리, 오종대, 전지나, 유수훈, 정보용, 윤소라) 외에도 허은실 시인, 류형선, 한동준, 윤영배, 가리온님이 함께 합니다. 시인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를 낭송하고 연주자들이 음악을 입히는 시낭송 음반도 함께 발매할 예정입니다. 더 많은 음악인들이 참여할 것이고 사진가, 화가, 글 쓰는 이, 성우들도 함께 합니다. 작은 힘과 정성과 마음을 모아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실을 인양하는 일에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음반은 4.16연대(세월호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 풀뿌리단체, 시민들이 함께 만든 연대체로 알고 있습니다)에 기증할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정민아와 첫 번째 노래를 녹음하는 날 함께 했던 노희준 작가의 글입니다.
우리의 음악이 평형수가 되기를 (정민아(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시간을 돌려 작년 4월의 감정을 기억해 본다. 슬픔, 분노, 억울함. 무엇보다 큰 건 ‘자괴감’ 이었다. 나 같은 한낱 개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뭔가 한다 해도 소용이 있을까. 수많은 생각에 손을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무작정 나갔던 광화문 1인 시위, 이 작은 행동에 많은 음악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 중 마음이 통한 동료가수 사이와 작당해 1인 시위와 버스킹 형식을 활용해 홍대 거리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은 음악가 선언을 진행했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나 시작하면, 일은 벌어진다는 것.
1월 말, 안산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 콘서트를 끝내고 돌아온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인들은 시집, 산문집, 그림책 등으로 마음을 모으고 있는데 음악인들은 왜 모여서 뭔가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 음원을 발표한 경우는 꽤 있었지만 함께 모여 음반을 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세월호 1주기.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존경하는 선배, 동료 음악가에게. 물리적으로 여건이 안 되거나 개인적으로 음원을 발표한 분들을 제외하고 8명의 초기 멤버가 꾸려졌다. (음악가: 김목인, 말로, 박혜리, 사이, 정민아, 차현, 하이미스터메모리/ 디자이너: 전지나) 최초 구상은 옴니버스 형태의 앨범을 1주기에 맞춰 발매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자체 회의를 거쳐 우선 1주기에는 ‘함께 부르는 노래’를 동영상과 디지털 음원으로 발매하고, 이후 500일까지 순차적으로 각자의 음원을 발표하기로 했다. 옴니버스 앨범은 나중에 취합된 음원을 모아 음반(CD)으로 발매하기로 정했다.
더불어 기획자 유수훈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조금은 지지부진했던 모임에 속도가 붙었다. 영상은 정보용 씨가 팀을 꾸려 도와주기로 하고 전체 음악 프로듀싱은 말로 씨가 맡았다. 몇 번의 감수를 거쳐 함께 부를 노래는 사이의 ‘다시, 봄’으로 결정됐다. 말로의 편곡을 거쳐 3월 15일 연희동의 한 녹음실에서 음악가 10명(드럼, 퍼커션: 오종대, 베이스: 차현, 기타: 강승원, 피아노: 박혜리, 가야금: 정민아/ 보컬: 강승원, 김목인, 말로, 박혜리, 사이, 요조, 정민아, 차현, 하이미스터메모리)이 모여 연주하고 함께 노래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구멍 난 곳을 메우기 위해 또 다른 곳을 구멍 내며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음악이 평형수가 되기를 기도한다. 억울하게 죽어간 목숨을 위로하고 남겨진 이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그 배의 이름은 왜 세월호였을까? (노희준(소설가))
그들은 왜 모였을까? 물어볼 필요조차 없지만, 동시에 가장 궁금한 질문이다. 며칠 전 우연히 음악가 몇 명이 모여 세월호 1주년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궁금하여 커피 열다섯잔을 사들고 녹음실에 급습했다. 신기하게도 모여있는 음악인들은 내가 술잔을 한번씩은 맞부딪친 사람들이었다. 요조 빼고. 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요조는 대답했다.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반문했다. "오히려 이런 일이 없다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요?" 이 곡의 작사자이자 작곡가인 사이는 말했다. "별 이유 없어요. 단지 이 문제를 덮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잊지 않았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거다. 이것 자체가 우리의 대답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정민아는 프로젝트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장르 사람들은 다들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음악인들은 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존경하는 음악인들에게 무작정 전화했어요. 여건이 안되는 분과 개인적으로 음원을 만들고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지금의 인원이 꾸려졌어요." 내가 문인들의 세월호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작품으로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소설은 르뽀의 형식을 취해서는 곤란하다는 핑계를 대봤자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생들의 약전(약전) 기술은 나의 핑계가 핑계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문학이건 음악이건 이러한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정치적 반응 이전에 기억의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기억의 목적보다 기억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녹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한명씩 한명씩 녹음해서 더빙하는 것보다는 소리가 좀 섞여 들어가더라도 같이 부르는 방식을 고수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몇 번 녹음과정을 봐왔지만 그렇게 많은 인원이 녹음부스 안에 들어가있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장르도 재즈, 펑크, 모던락, 모던국악으로 다양한 뮤지션들이, 어느 대목에서는 자신만의 연주방식과 창법을 포기해가며 사이좋게 녹음했다. 녹음비용은 녹음실에서 부담했으며, 뮤지션 중 그 누구도 돈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그저 모여서 노래했을 뿐이다.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빚을 지고 내몰려야만 나머지가 안전할 수 있는 세상에서, 죄없는 생명들이 주기적으로 희생되어야만 안보가 유지되는 국가에서, 세월호 어묵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결코 수사가 아닌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모였다. 그리하여, 이제 겨우 작은 시작일 뿐이다.
앨범 전체 앱에서 듣기
그 첫 번째 노래를 영상과 함께 발표합니다. 제목은 "다시, 봄" 입니다. 기울어진 봄... 변한 게 없는 봄... 질문하는 봄... 대답이 없는 봄... 부끄러운 봄... 기억하는 봄... 앞으로 한 달에 몇 곡 씩, 서너 달 동안 세월호를 기억하는 음원을 발표하고 오는 8월 세월호 500일이 되는 날, 음원을 모아 음반도 발표하고 공연도 가지려 합니다.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는 이들(강승원, 김목인, 말로, 요조, 박혜리, 사이, 정민아, 차현, 하이미스터메모리, 오종대, 전지나, 유수훈, 정보용, 윤소라) 외에도 허은실 시인, 류형선, 한동준, 윤영배, 가리온님이 함께 합니다. 시인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를 낭송하고 연주자들이 음악을 입히는 시낭송 음반도 함께 발매할 예정입니다. 더 많은 음악인들이 참여할 것이고 사진가, 화가, 글 쓰는 이, 성우들도 함께 합니다. 작은 힘과 정성과 마음을 모아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실을 인양하는 일에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음반은 4.16연대(세월호 가족대책위와 국민대책회의, 풀뿌리단체, 시민들이 함께 만든 연대체로 알고 있습니다)에 기증할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정민아와 첫 번째 노래를 녹음하는 날 함께 했던 노희준 작가의 글입니다.
우리의 음악이 평형수가 되기를 (정민아(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시간을 돌려 작년 4월의 감정을 기억해 본다. 슬픔, 분노, 억울함. 무엇보다 큰 건 ‘자괴감’ 이었다. 나 같은 한낱 개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뭔가 한다 해도 소용이 있을까. 수많은 생각에 손을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무작정 나갔던 광화문 1인 시위, 이 작은 행동에 많은 음악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 중 마음이 통한 동료가수 사이와 작당해 1인 시위와 버스킹 형식을 활용해 홍대 거리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은 음악가 선언을 진행했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나 시작하면, 일은 벌어진다는 것.
1월 말, 안산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 콘서트를 끝내고 돌아온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인들은 시집, 산문집, 그림책 등으로 마음을 모으고 있는데 음악인들은 왜 모여서 뭔가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 음원을 발표한 경우는 꽤 있었지만 함께 모여 음반을 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세월호 1주기.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존경하는 선배, 동료 음악가에게. 물리적으로 여건이 안 되거나 개인적으로 음원을 발표한 분들을 제외하고 8명의 초기 멤버가 꾸려졌다. (음악가: 김목인, 말로, 박혜리, 사이, 정민아, 차현, 하이미스터메모리/ 디자이너: 전지나) 최초 구상은 옴니버스 형태의 앨범을 1주기에 맞춰 발매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자체 회의를 거쳐 우선 1주기에는 ‘함께 부르는 노래’를 동영상과 디지털 음원으로 발매하고, 이후 500일까지 순차적으로 각자의 음원을 발표하기로 했다. 옴니버스 앨범은 나중에 취합된 음원을 모아 음반(CD)으로 발매하기로 정했다.
더불어 기획자 유수훈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조금은 지지부진했던 모임에 속도가 붙었다. 영상은 정보용 씨가 팀을 꾸려 도와주기로 하고 전체 음악 프로듀싱은 말로 씨가 맡았다. 몇 번의 감수를 거쳐 함께 부를 노래는 사이의 ‘다시, 봄’으로 결정됐다. 말로의 편곡을 거쳐 3월 15일 연희동의 한 녹음실에서 음악가 10명(드럼, 퍼커션: 오종대, 베이스: 차현, 기타: 강승원, 피아노: 박혜리, 가야금: 정민아/ 보컬: 강승원, 김목인, 말로, 박혜리, 사이, 요조, 정민아, 차현, 하이미스터메모리)이 모여 연주하고 함께 노래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구멍 난 곳을 메우기 위해 또 다른 곳을 구멍 내며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음악이 평형수가 되기를 기도한다. 억울하게 죽어간 목숨을 위로하고 남겨진 이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그 배의 이름은 왜 세월호였을까? (노희준(소설가))
그들은 왜 모였을까? 물어볼 필요조차 없지만, 동시에 가장 궁금한 질문이다. 며칠 전 우연히 음악가 몇 명이 모여 세월호 1주년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궁금하여 커피 열다섯잔을 사들고 녹음실에 급습했다. 신기하게도 모여있는 음악인들은 내가 술잔을 한번씩은 맞부딪친 사람들이었다. 요조 빼고. 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요조는 대답했다.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반문했다. "오히려 이런 일이 없다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요?" 이 곡의 작사자이자 작곡가인 사이는 말했다. "별 이유 없어요. 단지 이 문제를 덮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잊지 않았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거다. 이것 자체가 우리의 대답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정민아는 프로젝트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장르 사람들은 다들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음악인들은 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존경하는 음악인들에게 무작정 전화했어요. 여건이 안되는 분과 개인적으로 음원을 만들고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지금의 인원이 꾸려졌어요." 내가 문인들의 세월호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작품으로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소설은 르뽀의 형식을 취해서는 곤란하다는 핑계를 대봤자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생들의 약전(약전) 기술은 나의 핑계가 핑계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문학이건 음악이건 이러한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정치적 반응 이전에 기억의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기억의 목적보다 기억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녹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한명씩 한명씩 녹음해서 더빙하는 것보다는 소리가 좀 섞여 들어가더라도 같이 부르는 방식을 고수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몇 번 녹음과정을 봐왔지만 그렇게 많은 인원이 녹음부스 안에 들어가있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장르도 재즈, 펑크, 모던락, 모던국악으로 다양한 뮤지션들이, 어느 대목에서는 자신만의 연주방식과 창법을 포기해가며 사이좋게 녹음했다. 녹음비용은 녹음실에서 부담했으며, 뮤지션 중 그 누구도 돈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그저 모여서 노래했을 뿐이다.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빚을 지고 내몰려야만 나머지가 안전할 수 있는 세상에서, 죄없는 생명들이 주기적으로 희생되어야만 안보가 유지되는 국가에서, 세월호 어묵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결코 수사가 아닌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모였다. 그리하여, 이제 겨우 작은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