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소음의 왕
전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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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평점 4.5/ 90명
  • 발매일 : 2015.09.30
  • 발매사 : Sony Music
  • 기획사 :
'전자양' [소음의 왕]

멋지다. 앨범을 돌려 듣고 나도 몰래 한숨처럼 내뱉었다. 스스로도 놀랐다. 새 음악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멋지다는 감탄사를 입에 올린 게 얼마만이던가. 물론 아무리 길어도 '전자양' 이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기간 보다는 짧을 테지만 말이다. 8년, 자그마치 8년이다. 총 20곡, 재생시간 70분이라는 광기 어린 볼륨의 두 번 째 앨범 [숲] 이후 [소음의 왕] 을 내놓기까지, 갓 세상의 빛을 본 젖먹이가 처음으로 학교 문턱을 넘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요즘 뜨는 밴드들의 신상명세를 줄줄 외는 음악 마니아의 입에서 '전자양' 이 누구냐는 질문이, 소싯적 팬들 사이에서 살아는 있냐는 인사가 대세가 된 것도 과히 이상할 건 없었다. 일견 무모해 보이는 이 시간의 누적은 하지만 앨범을 듣다 보면 절로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설득력을 담보한다. 지금의 '전자양' 이 되기 위해 과거의 '전자양' 은 꼭 그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소음의 왕] 을 통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전자양' 은 더 이상 한 때 우리가 사랑했던 축축하고 여린 비트 위를 흐느적대던 반투명한 소년이 아니다. 시선을 한참 위로 올려야만 보이는 보다 거대하고 기묘해진 5인조 완전체다. 정식 멤버 영입 전부터 세션으로 활동하며 산전수전을 함께한 '프렌지' 의 '유정목' 과 '윤정식' 이 사운드의 틀을 잡고, '마이티 코알라' 의 '정아라' 와 '브로콜리 너마저' 의 드럼 '류지' 가 리듬 파트를 든든하게 받친다. 비로소, 밴드다.

믿음직한 동료들을 등에 업은 '전자양' 의 음악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 인트로를 포함해도 다섯 곡, 기다린 시간을 생각하면 짜도 너무 짠 숫자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할 정도의 높은 밀도를 자랑한다. 굳이 장르로 나눠 설명하기 보다는 골방에서 양지로 막 뛰쳐나온 인디 팝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노래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앨범을 이리저리 날뛴다.

지난 4월 발매했던 선행 싱글 [쿵쿵] 으로 살짝 맛볼 수 있었던, 그 누구도 아닌 '전자양' 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전자양' 식 - 포크 - 일렉트로 - 노이즈 - 펑크의 세계. 짧은 인트로 "거인" 뒤로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첫 곡 "우리는 가족" 은 '전자양' 밴드의 라이브를 한 번이라도 본 이들이라면 더없이 반가울 트랙이다. 매번 제 정신이 아닌 라이브로 관객들을 지금껏 없던 차원으로 날려 올리는 '전자양' 의 장기가 거침 없이 발휘된 곡이기 때문이다. 단 여덟 마디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조였다 풀었다 흔들었다 우두커니 섰다 쉼 없이 청자를 들었다 놓는 특유의 재주는 "생명의 빛", "소음의 왕" 으로 차곡차곡 이어진다. 난해한 구조에 현기증이 밀려오려는 순간마다 선명해진 이야기와 달콤한 멜로디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우리를 어르고 달랜다. 어느 한 순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마치 다리와 눈이 하나뿐인 겁쟁이 유령이나 폴카 댄스를 좋아하는 덩치 큰 괴물과 신나게 뛰어 노는 것처럼 정신 없이 소리치고 발을 구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곡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에 닿는다. 심오한 제목과는 다른, '전자양' 식의 기묘하고 뭉클한 인디 러브송이다. 꿈 속에서도 뛰어 들 수 있게 모래를 털지 않고 잠들겠다는, 두려움이 나의 심장을 꽉 쥘 때 사랑한다고 너에게 말하겠다 외치고 또 외치는 후렴구는 '검정치마' 와 함께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우겠다던 젊은 함성을 다시 한 점으로 모으기에 부족함 없는 낭만이다.

그 다짐에 뒤이어 이 작은 앨범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건 오로지 커다란 파도소리뿐. 평화롭기 보다는 발 아래 놓인 위태로운 세계를 뒤엎을 기세로 밀려왔다 다시 사라지는 그 소리에 몸을 맡긴 채 '전자양' 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아, 아직 얘기하지 않았던가. [소음의 왕] 은 '전자양' 이 연이어 발표할 세 장의 앨범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다. 앨범이 끝나고도 한참 뒤까지 이명처럼 남은 파도 소리에 기대어 아직 남은 두 번의 감탄과 환희를 기다린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댄다. -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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