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八月の詩情 / Hachigatsuno Sijyou (8월의 시정)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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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평점 4.5/ 38명
  • 발매일 : 2010.08.04
  • 발매사 : (주)지니뮤직
  • 기획사 : 파스텔뮤직
섬세하게 층을 이룬 보컬 하모니, 깊이있는 어레인지로 인한 서정 사운드의 걸작. 여름을 머금은 주옥같은 곡들로 이루어진 [八月の詩情(8월의 시정)]

램프에게 여름이란 테마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아니, 돌이켜보면 램프는 늘 여름을 노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日本少年の夏(일본소년의 여름)]이나 [ア・サマー・バケイション(A Summer Vacation)]처럼 여름을 전면적으로 다룬 곡에서부터 크고 작은 여름의 풍물을 마치 하이쿠의 계어(季語, 계절성을 드러내기 위한 시적 언어)처럼 노래 곳곳에 배치한 곡들까지, 램프의 계절 감각 넘치는 네 폭짜리 병풍에서 여름이란 철은 늘 유난스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아아 물보라 치는 파도여 여름이란 계절을 잊지 말아줘 태양이 바다로 질 때 나는 돌아가리’라고 노래했던 [夏に散らした小さな恋(여름에 흩어 놓은 작은 사랑)]이 있었고 [恋は月の蔭に(사랑은 달 그림자에)]에서는 ‘달 그림자에서 숨겨진 한 여름 밤의 사건’을 읊던 그들이다. [街は雨降り(거리엔 비)]에서 초여름의 꽃 향기 섞인 비 내음을 은근히 노래의 품 안에 소환해오던, ‘비 내리는 거리는 마치 6월 같아서 수국이 잘 어울리지’ 같은 구절은 어떤가. 이런 이들이 1년 넘게 끌어오던 정규 앨범 작업 중에서 여름에 관한 노래들만 쏙 빼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이 바로 이 [8월의 시정(八月の詩情)]이라니 이 앨범을 수놓는 감성의 밀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램프환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감상용 이지 리스닝의 미학은 이 앨범에서도 여전하다. 친숙한 코드진행이나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을 통한 훅의 확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섬세하게 층을 이룬 보컬 하모니, 조 바뀜과 템포 체인지는 물론 한 곡 안에서 사운드 스케이프가 몇 차례나 뒤집혀 버리는 순간들은 그야말로 전율을 준다. 음악 애호가라면 한번쯤 시간을 들여 헤드폰이나 좋은 스피커로 이 앨범을 쭉 들으면서 곡 별로 어떤 악기가 어느 순간에 나오는지 (참고로 스트링과 브라스를 포함하여 30여 가지의 악기가 이번 앨범에 등장한다) 크레딧을 짚어보길 바란다. 이처럼 복잡다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어레인지의 이면에는, 전문적인 음악교육은 커녕 변변한 악보도 그릴 줄 몰라 세션들에게 계이름만 딸랑 적어주고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램프 세 사람의 진지한 열정이 있다.

이들이 음반을 하나 녹음해서 발매하는 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는 앨범 디자인과 가사의 표기법 같은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집부터 쭉 통일되어있는 씨디 알판과 케이스 옆면 표기 스타일처럼, 램프 음반은 음악 뿐 아닌 디자인에도 일관된 고집스런 흐름 같은 것이 있다. 이들의 앨범을 여러 장 갖고 계신 분이라면 한 줄로 쭉 세워놓고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다년간의 서로 다른 작품을 통일된 형태의 디자인으로 맞출 수 있는 아티스트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램프의 멤버들이 동경하는 6, 70년대, 즉 뮤지션쉽이 더 대중적으로 존중받고 진지한 송라이터의 음악에 사람들이 기꺼이 귀 기울여 주었던 그 시절 음반들의 디자인이 이처럼 통일성이 있었을 것이다. (멤버들, 특히 소메야는 공공연히 ‘요즘 음반은 거의 사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노랫말로 부른 것들을 구태여 옛스러운 취향의 한자를 빌어 앨범에 표기하는 이들 특유의 방식은 사실 우리 말로 옮길 길이 막막하긴 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 ‘성냥’으로 굳어진 맞춤법을 굳이 고풍스럽게 ‘석류황(石硫黃)’으로 표기한다면 좀 비슷한 느낌을 주려나. 멤버 및 자켓 디자이너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꾸며진 앨범 커버와 아트웍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참여한 타이포그래퍼의 서체 작업도 전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진다. 충동적으로 기획되어 8월초에 맞춰 부랴부랴 만든 음반이라기엔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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