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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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의 알파카 전체 낭독 + 노래
- Goldendoodle
- 해변의 알파카
<해변의 알파카>
비행기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든가, 라이트 형제라든가, 린드버그라든가, 항공사 사장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일단, 그렇게 커다란 물체가 하늘을 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모양이 수상하다. 후랑크 소시지처럼 길쭉한 물건에다 펄럭이지도 않는 날개를 붙여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제트 엔진이라느니, 랜딩 기어라느니, 레이더, 자동항법장치 따위 여러 가지 거짓말을 잔뜩 갖다 붙여놓은 다음에 친절하고 아름답고 멋진 승무원들이 나와서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나에게는 어설픈 속임수로 보일 뿐이다.
배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쇠는 물보다 무겁지 않은가.
아, 물론 나도 부력이라든가, 양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뭔지는 알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행기는 날아가니까 내가 타는 비행기도 날아가고 있을 것이고 배는 뜨니까 내가 타는 배도 바다 위에 떠 있을 것이라고 모두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종종 떨어지곤 한다. 사람들이 잊을만하면 다시 경고하듯이. 그리고 배가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사진이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서울특별시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있습니다. 모가지가 길어 귀여운 짐승이여. 털이 복슬복슬한 너는 무척 따뜻한 족속인가보다. 알파카. 내 삶의 빛, 내 안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 알-파-카-: 혀의 겨드랑이를 스치는 공기, 입술이 떨어지면서 터져 나오는 물결, 여린입천장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우는 설근. 알. 파. 카.
알파카는 주로 페루나 볼리비아에 있지만 요즘 세상에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 어린이대공원의 알파카는 호주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알파카는 혼자 있으면 살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둘 이상 같이 지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대공원의 알파카도 한 쌍이다. 이름은 마추와 픽추.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페루의 산 바르톨로 해변에 있습니다. 알파카는 서핑을 하고 있었다. 아니, 뭐라고? 그렇다. 한 남자와 함께 노란 서프보드를 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핑을 한다기 보다는 서핑 훈련을 받고 있는 거였는데, 어쩐지 즐긴다기 보다는 겁에 질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프보드 앞쪽에는 알파카가 서 있고, 아 물론 네 발로 서 있고, 뒤쪽에는 남자가 서서, 아 물론 두 발로 서서, 파도가 밀려오면 알파카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털이 물에 폭삭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은 모습이 어쩐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 남자는 아이들에게 서핑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인지 강아지에게도 서핑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전 세계에 꽤 많은 모양인지 매년 국제 강아지 서핑 대회가 열리는데, 호주에서 열렸던 한 대회에서 이 남자는 캥거루와 코알라가 서핑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남자도 강아지 외에 앵무새, 햄스터, 고양이와 함께 서핑을 해 본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호주 사람이 캥거루, 코알라와 함께 서핑을 하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페루 사람이라면 당연히 페루를 대표하는 동물인 알파카와 함께 서핑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 나는 생각했다 ?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호돌이고, 호돌이는 호랑이니까, 역시 호랑이겠지. 그렇지만 호랑이와 함께 서핑을 한다는 것은, 뭐랄까, 호돌이가 요트에 타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호랑이를 데려와서 서프보드 위에 올라간다고 해도, 뒤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긴장되겠는가.
지도를 본다. 이 땅에 산이 이렇게 많은데 호랑이가 하나도 없다니. 여기서 호랑이가 살 수 있는 곳이 고작 동물원 정도라는 것은, 뭔가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도 불쌍하지만 호랑이 우리 근처에 사는 동물들도 참 긴장되겠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산에 호랑이를 풀어 놓는다면 난리가 나겠지. 사람도 호랑이도 불쌍해질 게 뻔하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토끼처럼 생겼어요, 라고 말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그것은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의 기를 꺾기 위해서 일부러 지어내 퍼뜨린 말이라고, 원래 우리나라의 지도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자, 이 그림을 똑똑히 보아라. 나는 똑똑히 보았다. 호랑이 한 마리가 대한민국 전도 모양의 틀 안에 억지로 구겨져 들어가 있는 모습을. 지금 다시 그림을 찾아서 보아도 그 호랑이는 참 불쌍해 보인다.
산 바르톨로 해변으로 가는 길을 찾아본다. 서울에서 엘에이로 간 다음, 거기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리마까지, 스물네 시간.
산 호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됐나봐요
잘못하면 길을 잃을 지도 몰라요
산 호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산 호세에 돌아가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겠어요
엘에이는 크고 넓은 고속도로 같아요
일단 백 달러를 내고 차를 사는 거죠
몇 주일만 지나면 스타가 될 테니까요
한 주 한 주 지나다보면 몇 년이 되죠
아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그리고 아직 스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차를 세우고 기름을 넣고 있죠
산 호세에 가면 마음 편히 숨을 쉴 수 있어요
거기는 넓고 자리도 많아요
그 안에 내가 쉴 수 있는 곳도 있겠죠
나는 산 호세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산 호세에 돌아가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겠어요
인기와 돈은 자석과도 같아요
사람을 집에서 멀리 밀어내니까요
마음속에 꿈이 있다면 혼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꿈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죠
그리고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이 혼자가 되어
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거죠
산 호세에는 친구가 많이 있어요
산 호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이라도 당장 산 호세로 가고 싶네요
호주에 갔다 왔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호주 버튼을 누르니 금방이었다.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린 곳은 동물원이었다. 분위기는 황량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 안에는 동물도 없었다. 나는 알파카라고 적혀 있는 팻말 앞에서 어설픈 영어로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웨어 이즈 알파카? 알-파-카-. 알. 파. 카.”
하지만 관리인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한 기분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알파카를 보지 못한다면 기껏 호주까지 온 의미가 없다. 게다가 이제 보니 여기는 겨울이었고 바람이 차가웠다.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엘리베이터가 있던 자리로 향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곳의 알파카는 모두 다른 나라로 가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호주는 그저 잠시 거쳐가는 곳인 걸까. 그냥 어린이대공원에 갈 걸 그랬나. 아니면 처음부터 페루나 볼리비아로 갈 걸 그랬나. 하지만 아까 탔던 엘리베이터에는 페루 버튼이나 볼리비아 버튼은 없었던 것 같았다. 잠깐. 한국 버튼은 있었던가?
허겁지겁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K 자리에도, R 자리에도, S 자리에도 한국은 없었다. 난감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이제 보니 페루 버튼과 볼리비아 버튼은 있는데 둘 중에 아무데나 가 볼까. 하지만 일단 집에 가서 두꺼운 옷을 챙겨와야 할 것 같았다. 페루나 볼리비아로 갔는데 여기보다도 추우면 정말 큰일 아닌가.
그러다가 제일 마지막 자리에 있는 음성 인식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라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냥 코리아라고 하면 북한으로 가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라고 하는 것보다는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정말 확실하게 하려면 서울 코리아라고 하면 된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나는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잘못되면 큰일이니 몇 번 발음 연습을 하고나서, 크게 한숨을 쉰 다음에, 음성인식 버튼을 눌렀다. 도동, 하는 소리가 나고, 이게 시리인지 오케이 구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정확히 발음하면 알아듣겠지. 나는 억양과 강세, 그리고 특히 R 발음에 신경 쓰면서 최대한 네이티브처럼 들리도록 말했다.
“쎄울, 꼬레아.”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다. 알파카 님이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 해변에 있습니다. 알파카는 혼자서 서핑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프보드 위에 네 발로 서있더니, 파도가 밀려오자 앞발을 들고 뒷발로 일어서서 멋지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알파카!
어어, 안녕!
이제는 파도 잘 타네?
응, 많이 익숙해졌어
재밌기도 하고
다행이다
전에는 좀 불쌍해 보였어
언제?
페루에서
뭐, 처음엔 다 힘든 법이지
산타 크루즈에는 웬일이야?
엘에이에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산 호세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길을 잃어버렸어
응? 산 바르톨로가 아니라?
요즘 세상에 알파카는
어디에나 있잖아
호주에는 없던데
근데 여기서
산 호세로 가는 길 알아?
찾아볼게
산타크루즈 메트로 센터
퍼시픽 스테이션으로 가서
17번 버스를 타
1시간 9분 걸리고
요금은 7달러래
고마워
근데 너 한국 사람이지?
응 왜?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
호랑이야?
글쎄, 호돌이는 호랑이니까
호돌이?
그런 게 있었어
올림픽 마스코트
근데 왜?
지금 누가 여기서
호랑이랑 서핑을 하고 있는데
등에 태극기가 붙어 있네
회사에 갔더니 의자가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무실 사람들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거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벌떡 일어나 서류를 들고 복사기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모두들,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어째서 출근 시간 10분 전에 사람들이 다 와 있고, 왜 이렇게 바빠졌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의자였다. 나는 과장 앞으로 갔다.
- 사장님 지시라네. 의자를 하나 줄이고, 제일 늦게 출근하는 사원은 서서 일하라는 거야.
- 정 대리에게는 연락이 가지 않았나. 왜 그랬지? 페이스북으로 다 알렸는데. 뭐? 페이스북을 안한다고? 살다 살다 별 소리를 다 듣는구만. 사지 멀쩡한 젊은이가 왜 페이스북을 안 해?
- 서서 일하는 게 몸에도 좋다고 하더군. 페이스북 코리아도 그렇게 한다던데. 오래 앉아 있으면 척추가 비틀어진대요. 직원이 건강해야 회사가 잘 되지.
- 정 대리 그거 알고 있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벤저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그리고 누구더라... 아 그래 윈스턴 처칠도 책상 앞에 서서 일을 했다고 하네. 처칠 수상은 노벨 문학상도 받은 사람 아닌가. 우리나라에는 노벨상 받은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는데 말이야.
- 그런데 정 대리는 왜 페이스북을 안 하나? 카카오톡은 하나? 아, 그러고 보니 카카오톡 회사에서도 서서 일한다더군.
- 스탠딩 책상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경리과에서 예산이 늦게 나와서 말이야. 다음 달에 들어온다고 하네.
- 그리고 다다음 달에는 말이야. 사무실에 사이클 머신도 들어온다고 하네. 서 있다가 힘들면 자전거 타면 되고. 박 대리 허리 튼튼해지면 정 대리도 좋겠구만. 핫핫핫.
- 아아,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정 대리, 정 서 있기 싫으면 박 대리 무릎 위에라도 앉지 그러나. 어차피 결혼할 사이면서. 헛헛헛.
- 이봐. 왜 이러는 거야? 더 이상 나 곤란하게 하지 말게. 어이, 박 대리. 이리 좀 와보게. 데리고 나가서 진정 좀 시켜.
의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아도
여전히 그대로 의자예요
하지만 의자는 집과는 다르고
집은 이제 집이 아니에요? 꼭 껴안아 줄 사람이 없다면
잠들며 입 맞출 사람이 없다면
방은 그 안에 어둠뿐이어도
여전히 그대로 방이죠
하지만 방은 집과는 다르고
집은 이제 집이 아니에요
우리 두 사람이 헤어졌다면
한 사람의 마음이 아프다면
이따금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그러면 어느새 당신의 얼굴이 나타나죠
하지만 그것은 무모한 장난이에요
끝이 날 때는 눈물로 맺으니까요
그대여 제발 부탁해요? 실수 한 번으로 우리를 갈라놓지 말아요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없어요
이 집을 다시 집으로 만들어줘요
내가 계단을 올라 열쇠를 돌리면
아 제발 우리 사랑했던 그대로 있어줘요
옆으로 돌아 누웠다. 눈앞에 의자가 보인다. 의자는 집과 다르다. 방도 집과는 다르다. 집은 이제 집이 아니다. 어디에도 몸을 둘 곳이 없는 것만 같아 어떻게 누워도 불편하기만 하다.
새로운 그림이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앨리스 님과 함께 이상한 나라에 있습니다. 올라온 그림은 존 테니얼이 그린 마흔두 장의 삽화 중 여덟 번째, 도도새가 앨리스에게 골무를 주는 장면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뒤쪽에 알파카의 귀 같은 것이 어렴풋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앨리스는 코커스 경주에서 우승을 해서 원래 자기 것이었던 골무를 상으로 받았다. 다른 동물들도 모두 우승을 해서 앨리스에게 사탕을 받았다. 아마 알파카도 사탕을 받았을 것이다.
알파카는 왜 거기로 갔을까. 어쩌면 서핑을 하다가 몸이 젖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코커스 경주는 몸을 말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이상한 나라로 가고 싶다. 만약 지금 주머니 달린 조끼를 입은 토끼 한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나, ‘아, 이런 이러다 늦겠군’하고 중얼거리고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본 다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구멍으로 쏙 들어간다면, 나는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을까?
비행기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차도 버스도 자동차도 자전거도 안 된다. 걸어가는 것조차 어렵다.
사랑을 하게 되면 뭐 좋은 거라도 나오나요?
부풀어 오른 마음을 터뜨리는 남자
바늘을 들고 오는 남자가 고작이에요
다시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래
? 남자에게 키스를 하면 뭐 좋은 일이라도 생기나요?? 세균을 잔뜩 먹어서 폐렴에 걸리게 되죠
그런 다음에 남자는 절대로 전화하지 않아요
다시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래
저기 당신 나에게 일일이 설명하려고 들지 말아요
나도 다 겪어 본 일이고 지금은 정말로 후련해요
당신에게도 걸려 있는 그런 올가미에서 빠져나왔다구요
그래서 내가 지금 차근차근 얘기해주고 있잖아요
사랑을 하게 되면 뭐 좋은 거라도 나오나요?
거짓말과 고통과 슬픔이 생겨날 뿐이죠
그러니 정말 오늘만이라도
다시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래
새로운 링크가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I’ll never fall in love again의 스물두 번째 아포스트로피 속에 있습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하나하나 세어 본다. 댓츠, 아일, 아일, 히일, 아일, 돈트, 아일, 돈트, 왓츠, 코즈, 아이브, 아임, 아임, 아임, 아일, 아일, 아임, 아임, 아일, 돈트, 아일 그리고 아일.
나는 마지막 아포스트로피에 손을 가져간다.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가 손가락 끝으로 파란 하이퍼링크에 닿았다. 이대로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서, 온 세상 알파카들을 다 만나고 싶다. 계속 그렇게 숫자를 세어 가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마지막 아포스트로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살이 파랗게 물든 바다에 비쳐와
하얗게 부서져 파도 거품이 피어오르고
그렇게 마음은 어느새 다른곳으로 가 있어
선명한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올려놓고
어디론가 멀리 떠날까
한 번 일어났다
두 번 돌아봐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두근거리는 걸음으로
버스는 해변을 따라서 동그란 커브를 그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어
여기서 더 멀리 가볼까
비행기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든가, 라이트 형제라든가, 린드버그라든가, 항공사 사장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일단, 그렇게 커다란 물체가 하늘을 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모양이 수상하다. 후랑크 소시지처럼 길쭉한 물건에다 펄럭이지도 않는 날개를 붙여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제트 엔진이라느니, 랜딩 기어라느니, 레이더, 자동항법장치 따위 여러 가지 거짓말을 잔뜩 갖다 붙여놓은 다음에 친절하고 아름답고 멋진 승무원들이 나와서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나에게는 어설픈 속임수로 보일 뿐이다.
배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쇠는 물보다 무겁지 않은가.
아, 물론 나도 부력이라든가, 양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뭔지는 알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행기는 날아가니까 내가 타는 비행기도 날아가고 있을 것이고 배는 뜨니까 내가 타는 배도 바다 위에 떠 있을 것이라고 모두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종종 떨어지곤 한다. 사람들이 잊을만하면 다시 경고하듯이. 그리고 배가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사진이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서울특별시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있습니다. 모가지가 길어 귀여운 짐승이여. 털이 복슬복슬한 너는 무척 따뜻한 족속인가보다. 알파카. 내 삶의 빛, 내 안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 알-파-카-: 혀의 겨드랑이를 스치는 공기, 입술이 떨어지면서 터져 나오는 물결, 여린입천장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우는 설근. 알. 파. 카.
알파카는 주로 페루나 볼리비아에 있지만 요즘 세상에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 어린이대공원의 알파카는 호주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알파카는 혼자 있으면 살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둘 이상 같이 지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대공원의 알파카도 한 쌍이다. 이름은 마추와 픽추.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페루의 산 바르톨로 해변에 있습니다. 알파카는 서핑을 하고 있었다. 아니, 뭐라고? 그렇다. 한 남자와 함께 노란 서프보드를 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핑을 한다기 보다는 서핑 훈련을 받고 있는 거였는데, 어쩐지 즐긴다기 보다는 겁에 질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프보드 앞쪽에는 알파카가 서 있고, 아 물론 네 발로 서 있고, 뒤쪽에는 남자가 서서, 아 물론 두 발로 서서, 파도가 밀려오면 알파카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털이 물에 폭삭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은 모습이 어쩐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 남자는 아이들에게 서핑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인지 강아지에게도 서핑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전 세계에 꽤 많은 모양인지 매년 국제 강아지 서핑 대회가 열리는데, 호주에서 열렸던 한 대회에서 이 남자는 캥거루와 코알라가 서핑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남자도 강아지 외에 앵무새, 햄스터, 고양이와 함께 서핑을 해 본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호주 사람이 캥거루, 코알라와 함께 서핑을 하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페루 사람이라면 당연히 페루를 대표하는 동물인 알파카와 함께 서핑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 나는 생각했다 ?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호돌이고, 호돌이는 호랑이니까, 역시 호랑이겠지. 그렇지만 호랑이와 함께 서핑을 한다는 것은, 뭐랄까, 호돌이가 요트에 타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호랑이를 데려와서 서프보드 위에 올라간다고 해도, 뒤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긴장되겠는가.
지도를 본다. 이 땅에 산이 이렇게 많은데 호랑이가 하나도 없다니. 여기서 호랑이가 살 수 있는 곳이 고작 동물원 정도라는 것은, 뭔가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도 불쌍하지만 호랑이 우리 근처에 사는 동물들도 참 긴장되겠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산에 호랑이를 풀어 놓는다면 난리가 나겠지. 사람도 호랑이도 불쌍해질 게 뻔하다.
우리나라의 지도는 토끼처럼 생겼어요, 라고 말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그것은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의 기를 꺾기 위해서 일부러 지어내 퍼뜨린 말이라고, 원래 우리나라의 지도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자, 이 그림을 똑똑히 보아라. 나는 똑똑히 보았다. 호랑이 한 마리가 대한민국 전도 모양의 틀 안에 억지로 구겨져 들어가 있는 모습을. 지금 다시 그림을 찾아서 보아도 그 호랑이는 참 불쌍해 보인다.
산 바르톨로 해변으로 가는 길을 찾아본다. 서울에서 엘에이로 간 다음, 거기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리마까지, 스물네 시간.
산 호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됐나봐요
잘못하면 길을 잃을 지도 몰라요
산 호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산 호세에 돌아가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겠어요
엘에이는 크고 넓은 고속도로 같아요
일단 백 달러를 내고 차를 사는 거죠
몇 주일만 지나면 스타가 될 테니까요
한 주 한 주 지나다보면 몇 년이 되죠
아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그리고 아직 스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차를 세우고 기름을 넣고 있죠
산 호세에 가면 마음 편히 숨을 쉴 수 있어요
거기는 넓고 자리도 많아요
그 안에 내가 쉴 수 있는 곳도 있겠죠
나는 산 호세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산 호세에 돌아가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겠어요
인기와 돈은 자석과도 같아요
사람을 집에서 멀리 밀어내니까요
마음속에 꿈이 있다면 혼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꿈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죠
그리고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이 혼자가 되어
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거죠
산 호세에는 친구가 많이 있어요
산 호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이라도 당장 산 호세로 가고 싶네요
호주에 갔다 왔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호주 버튼을 누르니 금방이었다.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린 곳은 동물원이었다. 분위기는 황량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 안에는 동물도 없었다. 나는 알파카라고 적혀 있는 팻말 앞에서 어설픈 영어로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웨어 이즈 알파카? 알-파-카-. 알. 파. 카.”
하지만 관리인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한 기분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알파카를 보지 못한다면 기껏 호주까지 온 의미가 없다. 게다가 이제 보니 여기는 겨울이었고 바람이 차가웠다.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엘리베이터가 있던 자리로 향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곳의 알파카는 모두 다른 나라로 가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호주는 그저 잠시 거쳐가는 곳인 걸까. 그냥 어린이대공원에 갈 걸 그랬나. 아니면 처음부터 페루나 볼리비아로 갈 걸 그랬나. 하지만 아까 탔던 엘리베이터에는 페루 버튼이나 볼리비아 버튼은 없었던 것 같았다. 잠깐. 한국 버튼은 있었던가?
허겁지겁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K 자리에도, R 자리에도, S 자리에도 한국은 없었다. 난감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이제 보니 페루 버튼과 볼리비아 버튼은 있는데 둘 중에 아무데나 가 볼까. 하지만 일단 집에 가서 두꺼운 옷을 챙겨와야 할 것 같았다. 페루나 볼리비아로 갔는데 여기보다도 추우면 정말 큰일 아닌가.
그러다가 제일 마지막 자리에 있는 음성 인식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라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냥 코리아라고 하면 북한으로 가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라고 하는 것보다는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정말 확실하게 하려면 서울 코리아라고 하면 된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나는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잘못되면 큰일이니 몇 번 발음 연습을 하고나서, 크게 한숨을 쉰 다음에, 음성인식 버튼을 눌렀다. 도동, 하는 소리가 나고, 이게 시리인지 오케이 구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정확히 발음하면 알아듣겠지. 나는 억양과 강세, 그리고 특히 R 발음에 신경 쓰면서 최대한 네이티브처럼 들리도록 말했다.
“쎄울, 꼬레아.”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다. 알파카 님이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 해변에 있습니다. 알파카는 혼자서 서핑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프보드 위에 네 발로 서있더니, 파도가 밀려오자 앞발을 들고 뒷발로 일어서서 멋지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알파카!
어어, 안녕!
이제는 파도 잘 타네?
응, 많이 익숙해졌어
재밌기도 하고
다행이다
전에는 좀 불쌍해 보였어
언제?
페루에서
뭐, 처음엔 다 힘든 법이지
산타 크루즈에는 웬일이야?
엘에이에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산 호세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길을 잃어버렸어
응? 산 바르톨로가 아니라?
요즘 세상에 알파카는
어디에나 있잖아
호주에는 없던데
근데 여기서
산 호세로 가는 길 알아?
찾아볼게
산타크루즈 메트로 센터
퍼시픽 스테이션으로 가서
17번 버스를 타
1시간 9분 걸리고
요금은 7달러래
고마워
근데 너 한국 사람이지?
응 왜?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
호랑이야?
글쎄, 호돌이는 호랑이니까
호돌이?
그런 게 있었어
올림픽 마스코트
근데 왜?
지금 누가 여기서
호랑이랑 서핑을 하고 있는데
등에 태극기가 붙어 있네
회사에 갔더니 의자가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무실 사람들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거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벌떡 일어나 서류를 들고 복사기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모두들,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어째서 출근 시간 10분 전에 사람들이 다 와 있고, 왜 이렇게 바빠졌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의자였다. 나는 과장 앞으로 갔다.
- 사장님 지시라네. 의자를 하나 줄이고, 제일 늦게 출근하는 사원은 서서 일하라는 거야.
- 정 대리에게는 연락이 가지 않았나. 왜 그랬지? 페이스북으로 다 알렸는데. 뭐? 페이스북을 안한다고? 살다 살다 별 소리를 다 듣는구만. 사지 멀쩡한 젊은이가 왜 페이스북을 안 해?
- 서서 일하는 게 몸에도 좋다고 하더군. 페이스북 코리아도 그렇게 한다던데. 오래 앉아 있으면 척추가 비틀어진대요. 직원이 건강해야 회사가 잘 되지.
- 정 대리 그거 알고 있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벤저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그리고 누구더라... 아 그래 윈스턴 처칠도 책상 앞에 서서 일을 했다고 하네. 처칠 수상은 노벨 문학상도 받은 사람 아닌가. 우리나라에는 노벨상 받은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는데 말이야.
- 그런데 정 대리는 왜 페이스북을 안 하나? 카카오톡은 하나? 아, 그러고 보니 카카오톡 회사에서도 서서 일한다더군.
- 스탠딩 책상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경리과에서 예산이 늦게 나와서 말이야. 다음 달에 들어온다고 하네.
- 그리고 다다음 달에는 말이야. 사무실에 사이클 머신도 들어온다고 하네. 서 있다가 힘들면 자전거 타면 되고. 박 대리 허리 튼튼해지면 정 대리도 좋겠구만. 핫핫핫.
- 아아,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정 대리, 정 서 있기 싫으면 박 대리 무릎 위에라도 앉지 그러나. 어차피 결혼할 사이면서. 헛헛헛.
- 이봐. 왜 이러는 거야? 더 이상 나 곤란하게 하지 말게. 어이, 박 대리. 이리 좀 와보게. 데리고 나가서 진정 좀 시켜.
의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아도
여전히 그대로 의자예요
하지만 의자는 집과는 다르고
집은 이제 집이 아니에요? 꼭 껴안아 줄 사람이 없다면
잠들며 입 맞출 사람이 없다면
방은 그 안에 어둠뿐이어도
여전히 그대로 방이죠
하지만 방은 집과는 다르고
집은 이제 집이 아니에요
우리 두 사람이 헤어졌다면
한 사람의 마음이 아프다면
이따금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그러면 어느새 당신의 얼굴이 나타나죠
하지만 그것은 무모한 장난이에요
끝이 날 때는 눈물로 맺으니까요
그대여 제발 부탁해요? 실수 한 번으로 우리를 갈라놓지 말아요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없어요
이 집을 다시 집으로 만들어줘요
내가 계단을 올라 열쇠를 돌리면
아 제발 우리 사랑했던 그대로 있어줘요
옆으로 돌아 누웠다. 눈앞에 의자가 보인다. 의자는 집과 다르다. 방도 집과는 다르다. 집은 이제 집이 아니다. 어디에도 몸을 둘 곳이 없는 것만 같아 어떻게 누워도 불편하기만 하다.
새로운 그림이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앨리스 님과 함께 이상한 나라에 있습니다. 올라온 그림은 존 테니얼이 그린 마흔두 장의 삽화 중 여덟 번째, 도도새가 앨리스에게 골무를 주는 장면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뒤쪽에 알파카의 귀 같은 것이 어렴풋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앨리스는 코커스 경주에서 우승을 해서 원래 자기 것이었던 골무를 상으로 받았다. 다른 동물들도 모두 우승을 해서 앨리스에게 사탕을 받았다. 아마 알파카도 사탕을 받았을 것이다.
알파카는 왜 거기로 갔을까. 어쩌면 서핑을 하다가 몸이 젖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코커스 경주는 몸을 말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이상한 나라로 가고 싶다. 만약 지금 주머니 달린 조끼를 입은 토끼 한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나, ‘아, 이런 이러다 늦겠군’하고 중얼거리고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본 다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구멍으로 쏙 들어간다면, 나는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을까?
비행기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차도 버스도 자동차도 자전거도 안 된다. 걸어가는 것조차 어렵다.
사랑을 하게 되면 뭐 좋은 거라도 나오나요?
부풀어 오른 마음을 터뜨리는 남자
바늘을 들고 오는 남자가 고작이에요
다시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래
? 남자에게 키스를 하면 뭐 좋은 일이라도 생기나요?? 세균을 잔뜩 먹어서 폐렴에 걸리게 되죠
그런 다음에 남자는 절대로 전화하지 않아요
다시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래
저기 당신 나에게 일일이 설명하려고 들지 말아요
나도 다 겪어 본 일이고 지금은 정말로 후련해요
당신에게도 걸려 있는 그런 올가미에서 빠져나왔다구요
그래서 내가 지금 차근차근 얘기해주고 있잖아요
사랑을 하게 되면 뭐 좋은 거라도 나오나요?
거짓말과 고통과 슬픔이 생겨날 뿐이죠
그러니 정말 오늘만이라도
다시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래
새로운 링크가 올라왔다. 알파카 님이 I’ll never fall in love again의 스물두 번째 아포스트로피 속에 있습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하나하나 세어 본다. 댓츠, 아일, 아일, 히일, 아일, 돈트, 아일, 돈트, 왓츠, 코즈, 아이브, 아임, 아임, 아임, 아일, 아일, 아임, 아임, 아일, 돈트, 아일 그리고 아일.
나는 마지막 아포스트로피에 손을 가져간다.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가 손가락 끝으로 파란 하이퍼링크에 닿았다. 이대로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서, 온 세상 알파카들을 다 만나고 싶다. 계속 그렇게 숫자를 세어 가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마지막 아포스트로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살이 파랗게 물든 바다에 비쳐와
하얗게 부서져 파도 거품이 피어오르고
그렇게 마음은 어느새 다른곳으로 가 있어
선명한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올려놓고
어디론가 멀리 떠날까
한 번 일어났다
두 번 돌아봐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두근거리는 걸음으로
버스는 해변을 따라서 동그란 커브를 그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어
여기서 더 멀리 가볼까
멜론 님께서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