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더크로스의 해체
김혁건(The Cross)
넌 할 수 있어
앱에서 듣기

얼마 전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로 있는 친구가 사무실 이전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축하를 위해 사무실에 들렀는데 신인 가수들이 큰소리로 입을 맞추며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절로 웃음이 났다. 반짝거리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더 크로스로 활동할 당시 나는 회사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로 찍혀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인사를 안 하는 게 왜 자존심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연예인의 등급을 가르거나 소위 '뜨지 못한 연예인들'을 하대하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욱하는 마음에 화를 참아내지 못했었다. 반항적이고 거친, 인생에 타협이라는 단어는 없던 20대 초반의 철없던 나는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더 크로스의 는 남자들 사이에서, 특히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꾸준한 인기를 누렸었다.
음반 또한 반응이 좋았지만 기대만큼 판매 수익이 나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인터넷상에 음악파일을 올리고, 공유하고, 무료로 다운받는 게 불법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음반을 사지 않고 무료로 음원을 다운 받곤 했었다. 무료 P2P 사이트인 <소리바다>의 등장으로 톱 가수들도 음반 판매에 쓴 잔을 마셔야 했었던 시절이니 우리 앨범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노래만 부를 수 있으면 행복했지만 회사의 사정은 달랐다. 회사는 새로운 앨범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제 R&B 3인조로 가자.”
사장님의 호출로 모인 자리에서,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계시던 사장님의 첫마디였다. 불시에 무언가로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R&B라니.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물론 당시에 R&B음악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사장님의 제안은 돈 때문에 록을 버리라는 말처럼 들렸다.
“싫습니다.”
“혁건아 …”
“저는 록 음악만 합니다.”
심각한 사무실 분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3인조 R&B그룹으로 앨범을 내기 위해 새로운 멤버 한 명을 뽑아놓은 상황이었다.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나는 점점 회사와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회사와의 마지막은 합의해제로 잘 마무리되었지만, 시하와는 아무 말 없던 그 때 그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록 음악을 하려고 더 크로스를 결성했는데, 아무런 상의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배신감에 분이 풀리지 않아 그의 집을 찾은 적도 있었지만 서울을 떠나 새로운 멤버와 작업을 시작한 그를 만나는 건 이미 어려운 일이 되어 있었다. 이후 나는 한동안 음악을 하는 후배들을 모아 ‘더’를 뺀 ‘크로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었다. 홍대 건물 지하에 합주실을 얻고 락밴드를 상징하는 불꽃무늬를 그려놓은 차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공연을 했다. 어두운 클럽에서 가죽점퍼에 가죽 바지를 입고 땀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절정을 향해 폭발적으로 내지르는 비명 같은 노랫소리. 심장을 울리는 음악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것이 진짜 로커다운 모습이라고 여기며 밤새 곡을 만들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며 열정에 취했었다. 돌이켜보면 록 음악만을 최고라 여기며 타협도, 현실감도 없던 이 고집불통이 회사나 다른 멤버들의 상황을 듣지도, 보지도 않은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친구의 사무실 이전을 축하하러 온 자리에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신인 가수들을 만났다. 반짝거리는 그들의 눈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인사 하나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걸 왜 그 때는 몰랐을까.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속의 내가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친구들이 다시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나의 과거를 안아주듯 활짝 웃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더 고마워요.
어제는 되돌릴 수 없지만 오늘은 만들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럼 분명 내일도 달라지겠지. 이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한 번 더 인사를 해야겠다. 우리 또 만나요.
멜론 님께서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