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하모니카를 배우다.
김혁건(The Cross)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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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재활원에 있을 때 한 사회복지사님의 권유로 ‘하모니카 훈련과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경추 손상 환자들은 폐활량이 일반인들에 비해 3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늘 폐를 팽창, 수축시키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하모니카는 호기와 흡기를 모두 사용하는 악기로 심폐기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느낌으로 불어야하는 하모니카는 그만큼 많은 숨이 필요하지만, 비교적 배우기가 쉽고 크기도 작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악기였다. 처음에는 호흡훈련이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모니카는 내게 훈련 그 이상의 것이 되었다. 그 때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기에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악기로 노래하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손바닥만 한 나의 블루스 하모니카는 음악과의 마지막 연결고리였다. 나는 살기 위해 하모니카를 불었고, 하모니카가 있어 살아있음을 느꼈다.
“재활이나 해. 당신이 하모니카만 부니까 못 걷는 거야!”
옆 침대 환자분이 소리쳤다. 되도록이면 병실이 비었을 때 하모니카를 불렀는데, 하모니카에 빠져 다른 분들이 있을 때에도 하모니카를 부르는 날이 늘어났었다. ‘신경이 3센티 가량없는 제가 재활을 통해 걷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억울함을 전하고 싶기도 했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혹독한 연습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연습을 했고, 다시 항의가 들어오면 병원 밖으로 나가 연습을 하곤 했었다.
“눈을 감고 숲 속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음악치료 선생님은 하모니카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셨다. 눈을 감고 가만히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니 정말 숲속에 와있는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어느 여름 날,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편안히 누워 낮잠을 자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연주를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도 치료해 줄 수 없는 아픈 마음을 음악이라는 약으로 치유 받고 있는 것 같았다.
… 그 동안 너무 하모니카 연습에만 매달렸던 건 아닐까?
잠시 고독한 연습을 접어두기로 했다. 하모니카를 잘 부는 것도 좋지만 나는 음악으로 소통하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하모니카는 혼자 연주할 때에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함께 연주하면 더욱 풍요로운 음악이 된다. 애잔한 노래부터 신나는 행진곡까지. 사람들과 함께 하모니카를 연주하면서 나는 아픔을 잊었고, 서로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함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블루스 하모니카는 음악과 나의 연결고리이자,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다. 예전만큼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도 매일 하모니카를 연습한다. 한때는 하모니카 연주자를 꿈꾸며 6개월 정도 전문가 수업을 받기도 했었다. 지금은 노래도 부를 수 있고 하모니카까지 연주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게다가 250㎖였던 나의 폐활량이 650㎖까지 좋아졌으니, 이제 나의 삶에서 하모니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
가끔 누구에게도 말 못할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하모니카를 연주하곤 한다. 차분히 하모니카를 불다 보면 마치 누군가와
긴 대화를 한 것처럼 마음이 나아진다. 바쁜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 한 번쯤 하모니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울림을 들어보길 권한다. 분명 하모니카는 우리를 포근하고 기분 좋은 숲속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잎이 무성한 어느 나무 아래로
멜론 님께서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