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한걸음 더
김혁건(The Cross)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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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재활원에 있을 때 사회 복귀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 받았던 건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회복귀 훈련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사회복지사 한 분과 거리로 나왔다.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하자 기사님이 내려 리프트를 내리고 내 휠체어를 채운 뒤 리프트를 다시 올려주셨다. 10분에서 15분정도 걸린 것 같다. 승객 분들이 화가 나서 나를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그 분들에게 미안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15분이 걸려 버스에서 내렸다. 리프트에서 내려오며 다시는 버스를 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갔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해 만든 엘리베이터 앞에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3번 보내고 지하로 내려가 승강장 앞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문이 열렸지만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버거웠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돌아섰다.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영화 관람을 통한 사회복귀 훈련도 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데 장애인 자리는 맨 앞좌석으로 지정 되어 있으니 좌석을 고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님께서 극장 측에 항의를 했고 뒷좌석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장정 6명이서 나를 들어 올려 뒷줄에 앉혀주었는데, 사람들에게 괜한 피해를 준 것 같아 연신 사과를 해댔다.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 민망한 곳을 나가고만 싶었다. 그 이후 나는 사회복귀훈련을 거부하고 누워만 있었다. 사회
복귀는 무슨… 멍하니 누워서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작업치료사님이 헤드마우스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마에 센서를 부착하고 컴퓨터에 인식센서를 다니 머리로 마우스를 움직일 수 있었다. 호스에 대고 입김을 후 불면 오른쪽 클릭, 마시면 왼쪽 클릭, 두 번 빨아들이면 더블 클릭이었다. 할 일 없이 누워만 있던 하루가 조금씩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이 곳 저 곳을 여행도 다니고, 맛 집 투어도 해보고 공연도 관람했다. 엄청 느린 타이핑이었지만 친구와 대화도 나누고,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딩동. 누군가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노래에 대한 고민으로 자문을 구한다는 내용 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딩동. 다시 메일이 왔다.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생각해보니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헤드마우스를 쓰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과 동영상 강의, 자료를 모아 보컬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팔을 쓰지 못하는 내게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일일이 마우스를 불어가며 적어야 했기에 한 페이지를 쓰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만 지치지 않았다. 담당 작업치료사님의 응원과 도움으로 나는, 나의 첫 책 <크로스 김혁건 보컬 강좌>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4개월 간 하루도 멈추지 않고 썼던 글이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나는 또 바보처럼 눈물을 흘렸다. 문득 처음 버스를 탔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날 내가 느꼈던 민망함과 미안함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내가 고개를 숙였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동정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에게 당당하지 못했으니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던 것이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세상도 사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내가 장애라는 방해물을 이겨내기 위해 멈추지 않고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글을 썼더니 책이 나왔다. 앞으로 내 갈 길은 지금보다 더 멀고 험할 수도 있다. 허나 이제 그저 멍하니 멈춰 서있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멀고 험한 길에도 끝은 있을 것이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예상치 못한 행복도 만날 수 있을 테니.
너무 힘들면 가끔 쉬어가긴 하겠지만,
결코 포기하진 않겠다.
멜론 님께서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