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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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대중 앞에
- 김혁건(The Cross)
- 넌 할 수 있어
앨범 녹음을 하던 중 <스타킹> 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내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지만 사람들 앞에 선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김혁건 전신마비」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인터넷에 올라 온 기사가 떠올랐다. 그때에는 생각도 못했던 ‘전신마비’라는 글을 보는 순간, 나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자극적인 기사는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고, 가족들은 기사를 일일이 막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슬픔을 너무나도 편안하게 내뱉는 세상에게 받은 건 비참함뿐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대중 앞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며칠을 고민 속에서 지내던 어느 날, 재활병원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TV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성악가의 행복한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TV를 보다 깜짝 놀랐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노래하던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스스로의 행복과 소통을 위해서이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용기를 내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촬영이 있던 방송국은 내가 가수로 데뷔했던, 첫 방송을 했던 곳이었다. 방송국에 도착하니 오래 전 이곳을 당당히 거닐던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내 명성은 사라졌고, 영광의 순간은 지나갔다. 갑자기 휠체어를 탄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나는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리허설 무대에 올랐다. 나오라는 노래는 나오지 않고 눈물만 흘러 내렸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대기실로 돌아와 거울을 바라보았다. TV로 보았었던 성악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 소중한 순간들을 더 이상 헛되게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사람들의 평가나 동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다. 숨을 크게 내쉬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보니 마음속 멀리서 무대 위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거울을 보니 이제 정말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대기실을 나섰다. 무대에 올라 성악가 김동규 선생님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평소에 존경하던 분과 함께 노래를 하다니. 내겐 정말 큰 영광이었다. 그때는 옆에서 누군가 배를 눌러줘야만 노래를 할 수 있을 때여서, 호흡도 잘 맞지 많고 부족한 점도 많았을 텐데 많은 분들이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셨다. 용기를 내 무대에 서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또 칭찬했다.
이후 서울대 로봇융합연구센터에서 만들어 준, 혼자서도 노래를 할 수 있는 자동화된 복식호흡 보조로봇장치와 함께 <스타킹>에 두 번 더 출연했다. 그로 인해 다른 방송과 강연, 공연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무대에 설 수 있게 도와주신 로봇융합연구센터 방영봉교수님과 연구원 그리고 스타킹 스탭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무대에 올라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면 긴장이 되면서도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내 몸이 아파와도 관객 분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 다시 힘이 나서 노래하게 되는 것 같다. 사고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더 깊어졌다. 많은 분들에게 나의 방송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분들은 내가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고, 내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자신들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말한다. 아직 내 안에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여러분들의 응원을 통해 그보다 더 큰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사랑하는 팬들에게 다시 노래하고 싶게 해 주셔서, 또 매일 매일을 살아갈 용기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나는 대중 앞에서 노래할 것이다.
누군가의 희망이라는 책임을 짊어지고.
멜론 님께서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