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경추야 놀자
김혁건(The Cross)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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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당하고 척수 손상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경추 장애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기까지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사실 어디에도 장애인의 삶에 대한 매뉴얼은 없으니 자신이 직접 부딪혀 가며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지만, 하루아침에 중도 장애인이 되면 모든 게 막막해진다. 경추 장애인이 된 나에게, 병원에서는 어깨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도 없을 것이고 평생 팔다리를 쓰지 못할 거라는 말만 했었다. 척수 손상 환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욕창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소변 줄이 막혀 혈압이 올라 죽을 것 같은데 “의사가 조치를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가 전부였다. 국내에는 아직 척수 손상 환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병원의 대응은 늘 한 박자 늦곤 했었다. 병원을 옮기고 좋은 의료진을 만나고 나서는 불신을 씻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병원에 있으면서 병을 더 얻은 것 같다는 생각만 했었다.
퇴원 후에도 우왕좌왕은 계속 되었다. 지금도 저혈압으로 밥 먹을 때마다 음식을 씹는 것 자체가 매우 어지러워 고생한다. 음식을 뱉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음식물이 목에 걸리기라도 하면 굉장히 위험해질 수도 있다. 또, 가래도 뱉을 수 없으니 가래를 삭혀주는 약을 먹거나 횡격막을 눌러 가래를 뱉어내야 하는데, 한 번은 하루 종일 배를 눌러도 가래가 잘 나오지 않아 엄청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딱딱한 음식을 씹으면 어지럽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과일도 부드러운 것만 골라 먹는다. 대변도 마찬가지다. 경추 환자는 장이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변이 돌덩어리처럼 딱딱하다. 그래서 물도 많이 마시고 요구르트도 먹고 대변이 묽어지는 약도 먹으며 신경을 써야 한다. 좌약을 넣고 녹기를 기다렸다가 옷 벗고 닦고 하면 1~2시간이 넘게 걸린다. 변을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세균이 들어가서 욕창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 관장을 해서 억지로 대변을 뽑아내 바로 처리해야 한다. 또 외출 했을 때 변이 나오면 큰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하루 전에 관장을 하는 것이 좋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나니, 나와 같은 고생을 누군가 똑같이 겪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경추 장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 게 된 것이 <경추야 놀자>라는 인터넷 카페다. 개설한지 1년 만에 250명이 넘는 분들이 가입하셨고,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경추 장애인들에겐 꼭 필요한 곳이다. 카페에는 수술이나 재활에 관한 이야기 말고도, 집에서만 있으려니 심심해 죽겠다. 요즘 드라마는 뭐가 재미있느냐. 일은 하고 싶은데 아무데서도 안 받아 준다. 등의 일상 글도 많이 올라온다. 어떤 회원 분은 간신히 일자리를 얻었는데 주차장에서 “장애인 자리에 주차하지 마세요!”를 외치는, 목소리로만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부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우리는 아픔에 대해 공유하고 위로하면서, 재치 있는 농담으로 고된 하루를 쉬어가면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얼마 전에는 5살 아이를 둔 어머니께서 가입을 하셨는데, 아이가 경추 1번과 2번을 다쳐 지금은 목에 구멍을 뚫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언제쯤 나을 수 있을까요…? 라는 아이 어머니의 물음에 가슴이 먹먹해져 답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항상 솔직한 글만 썼는데, 그 글에서 자꾸 내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사실대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좋아질 거라는 글을 쓰며 아이가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장애를 가지게 되어 세상을 누리지 못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카페 회원들과 매달 작은 금액이지만 정기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자신들도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더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동참하는 우리 회원님들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모인 성금으로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세브란스 병원에 있는 장애아동을 찾아가 자그마한 선물을 전달했다. 잠시라도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도 행복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을 보러 갈 생각이다.
또, 작년에는 두 번의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었다. 막상 모임을 가지려니 휠체어를 타는 회원들을 위한 장소부터 고심을 해야 했다. 운영자의 노력으로 식당도 크고 장애인 화장실도 있고, 경사로도 잘 되어있는 곳을 찾았지만 다들 컨디션 조절이 어려워 오랜 시간 함께 하기는 힘들었었다. 국립 현대 미술관과 국립 박물관에서 모임을 가졌었는데, 밥을 먹고 간단한 관람 후에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다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웃으며 헤어졌다. 누구한테도 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두려운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아픈 세상이지만 <경추야 놀자>라는 이름처럼 모두가 인생을 즐기기를 바란다.
올해가 가기 전에 또 만나요.
경추의, 경추에 의한, 경추를 위한, 경추야 놀자!
멜론 님께서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