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정보

새로운 도전 대학원
김혁건(The Cross)
넌 할 수 있어
앱에서 듣기

“혁건아. 대학원 복학하는 게 어때?”
놀란 나를 보며 아버지는 “남은 학기는 마쳐야지.”라며 웃으셨다. 솔직히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었다. 이 몸으로 학교를? 통학은 어떻게 하며, 손도 못 쓰는데 리포트에 시험, 논문은? …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고 이후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강의를 나가기 위해 대학원을 마쳐야 하는 건 맞았지만, 몸이 편치 않으니 학위는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당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잊을 만하면 대학원이야기를 꺼내시고, 잊을 만하면 설득하고, 잊을 만하면 나를 치켜세우더니, 은근슬쩍 나의 마음을 돌렸다. 아버지는 ‘할 수 없다.’라는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시더니, 어느새 ‘할 수 있다’에 느낌표까지 붙여주셨다. 느낌표를 받은 나는 2016년 봄, 대학원에 복학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학교 측에서는 장애인 학생이 있는 학부라면 몰라도, 대학원에는 장애 학생 사례가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부서로 떠넘기기 바빴다. 답답한 마음에 장애인인권센터를 찾았더니, 장애인 학생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항목이 생각보다 많았었다. 수강신청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대체 과제로 시험을 치를 수도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 이런 제도가 있다고 자료를 보여주니 그제야 나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학교의 첫 번째 장애인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다. 처음은 늘 힘들기 마련이라 첫 번째는 피하고 싶었지만, 나 이후의 누군가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더 당당하게 나의 권리를 요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스스로 알아보고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으니 더 악착같이 공부한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지만, 유학파나 명문대 출신들이 많다 보니 그들의 화려한 스펙에 위축되었고 자꾸만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불편해 토론 시간에도 말 한마디 못했고, 내게 잘해주는 사람들의 친절이 지나치게 느껴졌다. 게다가 오랜만에 들여다 본 전공 책이나 참고문헌은 처음 본 책처럼 낯설었다. 누군가 옆에서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줘야 했기에 혼자서는 책도 읽을 수 없었다. e북으로는 나오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었고, 음성지원이 되는 전공 서적은 한 권밖에 없었다. 수업 시간이 길어지면 혈압이 떨어져 어지러워 다리를 높게 올려두고 싶었지만, 건방져 보일수도 있다는 걱정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왜 그렇게 많은지… 이해하려다가 수업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할 수 있다!’의 느낌표가 다시 물음표로 바뀌고 있었다.
포기할까…
머릿속을 맴도는 그 말에 화가 났다. 처음의 그 굳은 의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했는데 겨우 이 정도에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다니. 두려움과 공포는 한 순간에 깨버려야 한다! 나는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쉬지 않고 악착같이 공부하고 토론에 참여했다. 옆 사람에게 책을 넘겨주기를 부탁했고, 집에 와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잠을 포기하고 영어를 배웠고, 논문 시험을 통과했다. 부끄러움을 당당함으로 바꿨더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어느새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처음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부터 저었는데 막상 이렇게 부딪혀 보니 왜 무조건 안 된다고 단정 지었는지 모르겠다. 주눅 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고 나니, 그때의 괴로움이 아주 작게 느껴진다. 경험이라는 것은 늘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아직 내게는 학위 논문이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이제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능력을 나 스스로 발휘해야 한다.
‘할 수 없다.’의 마침표를 물음표로,
그리고 ‘할 수 있다’에 느낌표까지!
멜론 님께서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